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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욱 Mar 05. 2018

루벤스와 진정한 발명자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제18편

루벤스 <베들레헴의 유아학살>

지난 2016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 중에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의 대작 사건이 있었다. 조영남의 그림이 그가 그린 것이 아니라 대작 화가가 그렸다는 것이다. 대작화가라고 주장한 작가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조씨에게 그려준 작품이 300점이 넘을 거"이라며 "작품을 거의 완성해 넘기면 조씨가 약간 덧칠을 하거나 사인만 해서 작품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사기혐의로 기소된 조영남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2017년 10월 17일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송기창 씨나 또 다른 대작 작가인 오모씨는 체계적으로 미술을 공부한 이들로 조영남씨와 비교에 숙련도 등에서 그림 실력이 뛰어나며, 이들의 도움을 받은 후에 조영남씨의 그림은 이전보다 훨씬 풍부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고 판단하였다. 대작 작가들은 그림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재료들을 스스로 선택해 구입하였고, 조영남씨는 작업실을 거의 찾아 오지 않다가 나중에 덧칠이나 수정하는 정도만 관여했고, 이는 현대미술에서 통용되는 조수의 사전적 의미와 다른 것으로 대작작가들이 조영남씨의 작업을 돕는 조수라기보다는 독립된 작가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정식으로 조수를 채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했으며, 작품을 구매한 이들도 해당 작품의 표현에 다른 사람이 관여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앤디 워홀(Andy Warhol) 등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하였다. 또한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어느 정도 해당 그림에 관여했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가격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조영남씨가 구매자들에게 조수의 관여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법원의 판단까지 간 것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안타깝다거나 유감이라는 의견이 많고, 법의 잣대가 절대적인 것도 아닐 수 있다.


앞선 판결에서 예로 든 앤디 워홀 뿐 아니라, 제프 쿤스(Jeff Koons),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i) 등의 현대 미술의 유명 작가들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조수를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실제 많은 작업이 조수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조씨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들은 모두 작품의 창의성이나 컨셉(concept)을 자신이 제공하고, 조수가 작업을 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라고 부르며 자신은 컨셉만 제공하고 실제 제작은 조수들이 하도록 하였고 이를 당당히 밝혔을 뿐 아니라 이러한 작업을 통해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대량생산체제 및 대중매체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였다.

데이미언 허스트 <죽음의 춤>

또한  데이미언 허스트는 작가의 붓질이 별 의미가 없으며 작가가 표현하는 개념이 중요하다는 의도를 강조하고자 알약에 조수들이 색깔을 칠하고 이를 전시하는 작품인 <죽음의 춤(Dance od Death)>이나 똑같은 원에 조수들이 색깔만 다르게 칠하도록 한 작품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s)> 같은 작품을 다수 제작한 바 있다. 허스트는 작품의 컨셉만 잘 전달된다면 그것이 실제로 누가 제작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며,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뿐 만 아니라, 제프 쿤스의 <풍선개(Baloon Dog)>와 같은 작품은 컨셉을 작가가 주면 이를 공장에서 제작하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이러한 예는 현대미술에서는 너무나 많다. 

제프 쿤스 <풍선 개>

그러면, 현대미술 작가들 말고 그 이전에도 조수들을 이용한 화가들이 있었을까? 물론 그런 화가들이 있었다. 특히 많은 그림을 그리거나, 대형 조각이나 벽화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방을 운영하며 조수들을 활용한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이다.


앞의 그림 루벤스의 <베들레헴의 유아학살(Massacre of the Innocents)>은 신약성서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경매에서 9,890만 달러에 낙찰된 가장 미싼 미술작품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당시 왕이었던 헤로데가 2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을 학살한 사건을 그린 것이다. 많은 정적들을 죽이고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려던 헤로데왕(성서에서는 헤롯왕)은 어느 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인 아기에게 경배를 드리러 왔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왕위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는 베들레헴과 그 인근의 유아들을 다 죽이게 된다. 이 유대인의 왕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예수였다. 마태복음 2장 16절에서는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고 하고 있다. 이처럼 헤로데왕은 이렇게 잔인하고 광기어린 군주로 묘사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는 헤로데가 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유대의 경제적 기반을 만든 왕으로도 평가되고 있으며, 예루살렘에 수도시설을 정비하고, 많은 요새를 건설하는 한편, 배를 건조하는데 꼭 필요한 아스팔트를 사해에서 채굴하기도 하고, 구리광산을 통해 많은 국가적 부를 축적한 치적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예루살렘의 성전을 크고 화려하게 재건하여 이 성전은 헤로데의 성전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하여간 루벤스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베들레헴의 유아학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루벤스의 말년에 속하는 작품으로, 루벤스 특유의 복잡한 원근처리, 동적이고 육감적인 표현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루벤스가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그린 그림인데, 유학 시절 그는 카라바조의 그림들에 영향을 받아 테네브리즘(Tenebrism) 스타일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테네브리즘이란, 극단적인 명암법을 일컫는 것으로 카라바조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기법으로, 이탈리아어 테니브라(tenebra, 어둠)를 어원으로 한다. 배경과 인물의 명암을 극단적으로 대조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을 더 강조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아래 카라바조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Judith Beheading Holofernes)>를 보면 테네브리즘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가 모나리자(Mona Lisa) 등을 그릴 때 사용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즉 공기원근법 방식의 명암법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이미 앞선 장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일본의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죽기전에 꼭 보고 싶었던 그림도 바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짐(Descent from the Cross)>이란 그림이었다. 원래 <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mders)>는 위다(Ouida)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메리 루이스 드 라 라메(Marie Louise de la Ramee)라는 사람의 소설이었으나, 이것을 각색한 일본의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하게 된다.  소설 속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네로가 죽을 때까지 꼭 보고싶은 그림으로 설정될 만큼 루벤스는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메리 루이스 드 라 라메
일본의 1975년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

루벤스는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주로 성서나 신화 등의 인물을 위주로 그림을 그렸는데, 든든한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풍족한 삶을 산 화가이다.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 루벤스의 재산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억원에 달하였다고 하니, 생전에 그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특히 화려한 색채와 강조하고 싶은 인물에 대한 빛의 떨어짐을 강조하고, 여인들의 풍만한 몸매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그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을 오가며 외교관의 역할도 하였는데, 이를 인정한 펠리페 4세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기도 하고, 영국의 찰스 1세로부터도 기사작위를 받기도 한다. 찰스 1세는 아래의 반 다이크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 바로크(Baroque) 회화는 16세기말 부터 18세기 초에 이르는 유럽의 미술사조로, 이후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크라는 말은 원래 포르투갈어로 'barroco'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진주'라는 것이었다. 이 용어가 불규칙하고 균형감이 없는 것에 대해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인데, 처음에는 바로그 음악에 대해 멜로디가 균형이 없고, 음악의 박자와 음이 변화무쌍하다는 면에서 이다. 바로크 회화는 르네상스 회화에 뒤이어 등장하게 되는데, 대각선의 복잡한 구도와 역동적인 다수의 인물이 화면에 등장하고, 동적인 자세와 구성을 가지고, 명암의 대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강조하는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주는 등의 특징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질서 정연한 기하학적 형체와 안정성 있는 정적인 느낌의 화풍이었으나, 바로크 시대에는 이를 동적인 느낌을 중시하고, 운동감과 강렬한 빛에 의한 명암의 대비 등을 통해 운동감을 주고, 이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바로크 회화의 대가들은 루벤스를 비롯해 뒤에 언급되는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푸생(Nicolas Poussin), 젠틀리스키(Antenisia Gentileschi), 프란스 할스(Frans Hals)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바로크 양식은 회화 뿐 아니라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 Handel),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등의 음악과 성베드로 대성당이나 베르사유 궁전 등의 건축,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등의 조각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루벤스는 유럽 곳곳에 자신의 그림 공방을 두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기도 하였다. 그는 공방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였는데, 먼저 주문이 들어오면 루벤스가 작은 그림으로 대충 그린다. 이때 물감도 대충 칠하고, 이것을 보고 조수들이 원래 그려야 할 사이즈로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다. 조수들도 인물을 그리는 조수, 동물을 그리는 조수, 나무를 그리는 조수, 건물을 그리는 조수 등으로 분업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조수들이 그림을 거의 완성하면, 루벤스가 이를 전체적으로 손을 보아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현대의 화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업이고, 조수를 이용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루벤스의 공방을 거쳐 유명한 화가가 된 인물이 갈색 톤의 인물화를 많이 남긴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이다. 아래의 그림은 반 다이크의 <찰스 1세(Charles I)>이다.

반 다이크 <찰스 1세>

이처럼 조수들을 고용하여 그림을 그리면, 진짜 그림을 그림 화가를 누구로 하여야 하는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가가 자신의 컨셉을 설정하고, 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을 조수가 그렸다면 이는 컨셉을 잡은 화가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미유 끌로델은 로댕의 연인이자 조수였다.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의 컨셉을 잡고 어떤 재료에 어떻게 조각할지 결정하고, 이에 따라 카미유가 실행에 옯겼으며, 로댕이 마지막 마무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한 많은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로댕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찬가지의 문제가 특허발명에서도 일어난다. 발명의 컨셉을 잡은 사람, 발명의 효과를 확인하고자 실험을 한 사람, 발명을 하는데 의견을 준 사람, 발명을 하라고 시킨 사람 등이 얽혀있는 경우 진정한 발명자를 누구로 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법은 진정한 발명자가 아니어도 특허출원시에 발명자로 등재될 수 있다. 이를 심사과정에서 확인하거나 등록된 후에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많은 기업에서 진정한 발명자 외에도 대표이사나 해당 발명자가 속한 연구팀의 부서장 등을 발명자로 기재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진정한 발명자가 누락되거나, 진정한 발명자가 아닌 사람을 발명자로 등재한 경우에는 심사과정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등록된 이후 무효화 과정이나 소송 과정에서 이것이 드러나면 해당 특허에 대한 일정한 제재가 있다. 즉 이러한 특허는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행사불능(unenforceale)한 권리가 된다. 이는 심사 및 등록을 해 주는 특허청을 속이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행사불능의 상태가 되면, 특허권이 바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권리를 행사하여 남이 무단으로 특허발명을 사용하여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다. 결국 특허권으로 어떤 이익을 창출하지 못 하여 껍데기만 남은 권리가 된다. 따라서 종종 등록후의 무효화 과정이나 침해소송에서 상대방이 해당 특허에 대해 진정한 발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미국 특허출원의 경우에는 진정한 발명자가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발명자가 아닌 자를 발명자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2010년 6월 미국의 연방항소법원(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은 어드밴스드 마그네틱 클로저와 로마 패스너스 간의 소송(Advanced Magnetic Closures, Inc. c. Rome Fasteners Corp.)에서 진정한 발명자가 누락된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진다. 소송에서 문제가 된 특허는 미국 특허 No. 5,572,773 특허로, 마그네틱 스냅 락(Magnetic Snap Lock)의 발명이었다. 마그네틱 스냅 락은 가방이나 지갑 등에 설치되어 여닫을 수 있도록 자석을 이용한 잠금장치를 의미한다. 마그네틱 스냅락의 예가 아래의 사진에 나타나 있다.

5,572,773 특허의 대표도면

어드밴스드 마그네틱 클로저는 로마 패스너를 비롯한 4개 회사를 상대로 1998년 10월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다. 이 사건에서 다른 쟁점도 있었지만, 피고는 해당 특허권이 공동 발명자의 이름을 누락하였기 때문에 행사불능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지방법원은 해당 특허의 출원 과정에서 진정한 발명자의 하나인 공동 발명자가 누락되었고, 이것은 부정한 행위(inequitable conduct)에 해당하여 특허권의 행사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판결한다. 이렇게 발명자를 누락한 것은 특허청을 기만하거나 속일 의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이루어진 것인데, 항소심 법원은 지방법원의 판결을 승인한 것이다. 법원은 특허출원시에 모든 진정한 발명자를 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고, 진정한 발명자가 아닌 자를 발명자로 등재하는 것은 부당한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심사 과정에서는 미국 특허법 제116조의 규정에 의해 진정한 발명자로 보정하는 것은 허용되고, 진정한 발명자는 특허출원된 발명의 청구항(claim)에 기재된 발명에 싱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어드밴스드 마그네틱 클로저는 결국 진정한 공동 발명자를 누락함으로써 해당 특허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마그네틱 스냅 락의 예


미국 특허법상 발명자의 정의는 '발명자는 발명의 주제(subject matter)를 발명하거나 발견한 자 또는 공동발명이라면 집합적 개념의 자들(individuals)'을 의미한다고 규정한다. 물론 공동발명이라고 하여도 반드시 물리적으로 함께 또는 동시에 작업을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발명에 기여한 정도가 동일하거나 모든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에 기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발명의 착상(inception)에 대한 기여 없이 기존의 기술을 활용한 자나 단순한 관리자 같은 경우에는 상호 협력관계라고 볼 수 없어 진정한 발명자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발명의 내용에 기여하지 않고 발명자를 관리하거나 그 결과에 대한 아이디어를 단순히 제안한 연구소장 또는 관련 임원이거나, 발명자의 지시에 따라 실험만을 했고 구체적인 발명의 착상에 기여한 바 없는 보조자는 진정한 발명자가 될 수 없다. 즉 공동발명자는 최소한의 협력(collaboration) 또는 구체적인 관계(connection)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각자가 독창성 있는 공헌을 하고 부분적이라도 최종적인 문제의 해결에 기여했다면 이들은 공동발명자가 될 수 있다. 


미국 특허법은 예전에 비해 발명자의 정정 기준은 크게 완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특허법 제256조에서는 등록 후에 발명자를 정정할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하여 기존에 있었던 악의가 아니었다는 진술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이와 관련한 소송에서 상대방이 악의로 발명자를 누락했다는 것을 다투게 되어 이에 성공한다면 부당한 행위(inequitable conduct)에 해당하게 되어 역시 권리행사 불능(unenforceable)의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정한 발명자의 누락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있다면 진정한 발명자임에도 불구하고 누락되어 정당한 보상인 직무발명보상금을 달라는 소송 정도일 것이며, 침해소송이나 무효와 관련해서는 문제가 될 여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으며, 만일 진정한 발명자가 누락되거나, 발명자가 아닌 자를 발명자로 포함하는 경우 이에 대해 추후 소송의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미국 출원을 하면서도 진정한 발명자가 아닌 대표이사나 해당 발명자의 소송 부서장 등을 발명자로 넣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빨리 없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가 불거져야 바꾸지 말고, 미리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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