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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Feb 17. 2022

나무는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산책을 하며 생각한 것

겨울나무는 봄을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고 하기엔 가여울 정도로 앙상하고 메마르고 추워 보여서. 어릴 적 봤던 문학 작품에서 그렇게 말해서. 하지만 얼마 전 벤치에 앉아 바라본 나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야. 겨울을 살아가는 거지.


맞다. 겨울 나무가 봄을 기다린다고 하기엔 계절마다 나무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한 계절 안에서도 문득 솟아난 새순, 연둣빛 아기 잎, 어린이 잎으로 바뀌어 가는 것처럼 또 다르다.


잔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손끝만 대도 차가운 함박눈이 나무 위로 사락사락 쌓이고 있었다. 나무는 춥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나무에게 집은 밖이었다. 하늘이 천장이고 흙이 바닥이라 추위에 숨을 수도 더위를 피할 수도 없는, 비와 눈, 햇빛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집. 바람이 흔들면 힘을 뺀 채 몸을 맡기고 비바람이 몰아치면 수년동안 허공으로 뻗어온 굵은 가지를 허탈하게 내어 놓기도 한다. 나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무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간다. 누가 보지 않아도, 알아차리지 않아도 그런 건 아무런 상관없다. 겨우내 죽은 것만 같은 나무들에서 계절이 천천히 피어나고 진해지고 머물다 흔적을 남겼다 곧 사라진다. 하루하루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나무들이 모여 계절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서서히 조금씩 변하는 시간을, 새삼 올려다보면 어느새 변한 시절을.


나무에겐 느리지만 꾸준히 해내는 모습이 있다. 나무는 조용히 강하다. 나도, 당신도 우리 각자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기를. 그렇게 한 시대를, 지금의 사회를 우리가 모여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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