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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n 29. 2023

점수를 위해 살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것

평균 성적을 차츰 끌어올린 결과, 나는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무난히 들어갈 수 있었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고등학생이 되니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능이었다.




수능에서 언어영역은 가장 비중이 큰 과목이었다. 당시는 수능이 400점 만점이던 시절이었는데 언어영역에 할당된 점수만 120점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무려 30%. 활자울렁증이 있었던 나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난 문과였으니 무작정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 2학년 때까진 그런 상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과목들처럼 공부하고 문제집 열심히 풀면 언어영역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고3이 되고 모의고사를 거듭할수록 혼란에 빠졌다. 120점 만점에 70점 정도가 나오곤 했는데, 그 점수보다 더 심각했던 건 항상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 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비문학 문제가 문학만큼 많았다. 또, 언젠가 한번은 봤을 법한 작품이 문제로 출제되던 문학 분야와는 달리 비문학은 늘 처음 보는 내용의 지문이 나왔다.


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느려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지문 2, 3개를 단 한 자도 읽지 못하고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무렇게나 찍어버린 10개, 15개의 문제들에 희망을 거는 내가 싫었다.


모의고사 언어영역 시간만 끝나면 나는 죽상이 됐는데, 시험을 가뿐하게 끝내고 후련한 표정을 짓는 친구들이 있었다. 마치 재미난 게임이라도 한 판 끝낸 것마냥.

신기하고도 의아했던 건 내신 성적이나 모의고사 전체 점수가 나보다 낮은 아이들 중에서도 그런 부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과 나의 차이는 딱 하나였다. 평소에 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

당시,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 우리 또래 사이에서는 판타지, 무협 소설 같은 것들이 인기였는데 나는 그것조차도 읽지 않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몇 번 펼쳐본 적은 있었지만 영 재미를 느끼지 못해 매번 그만두었다.


학교에 소설책을 가져와 읽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점수를 위해 살았다. 책보다는 문제집을 가까이했고, 읽는 재미보다는 정답 맞히는 스킬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실전 수능에서도 지문 두 개를 통째로 읽지 못하고 피 같은 문제들을 날려버렸다.


운 좋게도 그중에 정답을 맞힌 게 있어 최악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은 찰나의 감정이었을 뿐. 이내 한층 더 강화된 활자울렁증이 나를 찾아왔다.


더 이상 뭔가를 읽고 싶지 않았다. 글은 그저 공포였으니까.


점수를 위해 살았던 시간이 절대 가져다 주지 않았던 것. ‘읽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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