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는 못 가겠네.“
내 성적표를 본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중학생 때였다. 전 과목 평균 점수가 늘 70점대였던 시절.
특히 눈에 띄게 낮은 숫자가 있었다.
40.
국어점수였다.
학창시절 날 처음봤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되게 공부 잘하는 학생, 소위 범생으로 알았다. (생긴 게 그렇게 생겼나보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주변의 그런 기대에 부흥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공부가 특별히 어렵고 복잡할 건 없었으니까.
중학교부터는 달랐다. 모든 과목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경쟁에서도 밀렸다. 성적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바닥을 쳤다.
국어는 유난히 더 어렵게 느껴졌다. 시험기간엔 다른 과목 다 제쳐두고 국어에 매달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한번 40점까지 떨어졌던 점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70점 대 이상으로 잘 오르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국어가 나에게 공포의 과목이 되고, ’활자울렁증‘ 증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
전체 성적도 지지부진. 부모님은 나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슬슬 포기하시는 듯 했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나에게 기술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제안하셨다. 졸업만 하면 바로 군 부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괜찮은 조건이라고.
이대로 인문계에 가서 중위권에 애매하게 머무느니,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다 사람 사는 인생이니까, 진로를 그렇게 정했어도 어떻게든 잘 풀려갔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당시엔 그렇게 마음 먹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대학이고 뭐고,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에 안정적으로 들어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