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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Jan 23. 2024

공간에 박제된 시간을 들이킵니다

낯선 곳, 처음 가는 카페.

우연히 이곳저곳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곳입니다.

시장통 한구석에 숨어 있던 카페은 겉으로 봐서는 오랜 찻집입니다.

흔히 다방이라 부르는.

덜거덕대는 오래된 샷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안쪽의 공간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곳곳에 시간이 박제되어 머물고 있습니다.

다방과 빈티지 레트로 카페의 묘한 경계에 서 있는 공간.


테이블마다 메뉴판이 있네요.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핸드드립을 주로 하는 곳입니다.

아메리카노는 메뉴에도 없네요.

슬쩍 물어보니 해주긴 한답니다.

꿋꿋하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강, 중강, 중, 중약, 약.

이곳의 커피는 배전을 5단계로 일일이 로스팅을 하나 봅니다.

안전하게 가야죠.

중간을 시켰습니다.

아, 역시 모험 없는 인생은 약간의 실망과 지루함을 주는가 봅니다.

산미가 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네요.

중약으로 갔어야 했는데.

무모함을 피하는 선택은 실패는 없을지언정 후회는 남기는 게 아닐까요.


아쉬움이 짙었는지 자꾸만 시간을 들이킵니다.

공간에 박제된 오래된 시간을.

여기저기 걸려 있고 널려 있는 오래된 물건과 소품을 찬찬히 살핍니다.

벽걸이 괘종시계는 30분마다 현재로 돌아오게 종이 울립니다.

천 주름 밑의 장식 구슬이 몇 개 떨어져 나간 스탠드 조명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고 재촉하고요.


따뜻한 커피가 식으면 추억의 시간이 꺨까 봐 서둘러 마십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커피의 온도는 조금씩 내려가 있습니다.

약간씩 식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시간의 온도는 올라갑니다.

달뜬 얼굴이 되어 시간을 마십니다.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시간의 장막은 걷히네요.

요란하게 샷시 문을 여는 순간,

다시 현실로 발을 내딛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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