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어두운 카페는 한낮이라도 빛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가뜩이나 비 내리는 가을의 처량함에 몸을 살짝 떠는데,
온기 없는 불빛이라도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여서인지도 모르죠.
어느새 몸을 녹여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하루의 시간도 달라졌죠.
낮이 짧아지고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일을 하기 전에 책을 꺼내 듭니다.
요즘 ‘텍스트 힙’이라고 해서 책을 읽는 게 유행이라고 하네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져다 준 풍경입니다.
일시적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읽은 책은 인생의 한 조각으로 남을 테니까요.
문학은 감정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이라 합니다.
요약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그래서 문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끔 왜 소설나부랭이를 읽느냐고 질책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때마다 인간을 이해하는 훈련을 한다고 대답하고 싶더군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요약하는 방식으로는 어렵습니다.
인간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요즘 빅데이터로 인간을 이해하고 개인맞춤화를 할 수 있다고 하죠.
과연 그럴까요?
특정 연령대와 직업, 소득, 성별, 주소 등을 평균값으로 내어 ‘나’를 규정한다고요?
인간은 늘 예외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잔잔한 바다로 똑같이 보이지만,
곳곳에 해류가 존재하는 것처럼요.
보편과 특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이터로 인간을 규정한다는 게 억지 아닐까요?
문학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합니다.
한 인간의 핍진한 삶의 굴곡과 감정을 노출합니다.
때로 공감하면서도,
때로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죠.
문학을 잘 모르지만,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만큼은 갈수록 또렷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