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후 쌀쌀합니다.
산책을 나가면서 살짝 궁금해집니다.
그토록 환하게 빛나던 코스모스는 어떻게 됐을지.
코스모스라는 가을의 존재감은 어느새 희미해집니다.
차가운 비바람과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요.
아, 기운은 잠시 잃었을지 몰라도 아직은 가을이 물러날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기운은 떨어져 보여도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군요.
산책하다가 코스모스를,
또 곳곳에 피어 있는 들꽃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문득 핍진한 인생을 떠올립니다.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소설은 인간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어떤 작가가 말한 것처럼 ‘패배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연습인 거죠.
왜 패배한 인간의 삶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소설은 영웅을 다루지 않습니다.
영웅을 다루더라도 내면의 고통을 감당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고통과 패배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영웅 자신은 아는 게죠.
대부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삶을 삽니다.
그 삶의 내면을 보지 못하면 그저 평범하고 몰개성의 개체로만 인식할 뿐이죠.
타인의 삶을, 그 삶의 맥락을 더욱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흠결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홈결에 매혹된다.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지가 있는 사람이 인간적이라는 말과 맥락이 닿습니다.
흠결과 여지.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둘을 보이지 않는, 감추려 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불안을 느낄 뿐입니다.
오롯이 읽는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스마트폰을 감추고,
혼자 있을 공간을 찾고,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음악을 켠 뒤에 책을 꺼냅니다.
오늘도 흠결과 여지가 있는 여러 인물을 만나야겠습니다.
그들과 나의 만남이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시간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