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여행] 바다 풍경의 일부가 되어 보자!

by 홍윤표

그동안 아침은 간단하게 숙소에서 먹었지만 오늘은 아내가 검색해 둔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빵과 커피가 맛있다는 좋은 평이 많은 곳이다. 폴리냐노 아 마레 중심가에 있는 부르봉 다리를 지나기 전에 있는 카페로, 아직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우린 빵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유라에게는 초코맛 젤라토를 사주었다. 아침부터 젤라토를 먹이는 게 조금 걸렸지만, 일상에선 선뜻 하기 힘든 파격(?)을 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고 사소하지만 유라에게도 그런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소소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저번에 봤던 솔라맨이 있는지 구경하러 부르봉 다리 주변을 어슬렁 거렸는데, 마침 공연 준비 중인 그를 볼 수 있었다. 솔라맨의 정체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는데 척추후만증을 겪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몸집이 아이처럼 작아 보였나 보다. 장시간 꼼짝도 하지 않고 정지 상태로 앉아 있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 이런 게 장인이구나...... 새삼 그가 대단해 보였다.

가볍게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 위에서 어떤 멋쟁이 아저씨가 호객을 하고 있었다. 홍보지를 받아 보니 조그만 보트로 폴리냐노 아 마레 앞바다를 누비며 바다수영도 하는 체험 상품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뭘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우린 일단 홍보지를 받아 놓고 길 한쪽에서 살펴봤다. 꼼꼼한 성격의 아내가 인터넷으로 다른 회사의 상품들을 검색하며 가격을 비교했는데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보트를 타는 선착장까지 셔틀을 운행하고 있었다. 우린 아까 그 아저씨를 찾기 위해 다시 다리 위로 돌아갔다. 아저씨는 내가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열심히 찾아본 이탈리아 영화 중 한 작품에 나왔던 배우와 완전 똑같이 생겨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참고로 영화는 넷플릭스의 <리초네의 태양 아래>, <아말피의 태양 아래>다).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홍보지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가서 체험상품을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왓츠앱으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선불을 지급을 했다. 12시에 예약을 했기 때문에 우린 그때까지 숙소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선불을 준 게 실수는 아니었나 의심이 들려는 순간 왓츠앱으로 예약 완료됐다는 연락이 왔다.

우린 셔틀을 타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나갔다. 셔틀을 타는 곳에는 우리 말고도 이미 다른 두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합차가 와서 우리를 태우고 약 10분 거리의 선착장으로 갔다. 선착장에는 보트가 엄청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보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우리가 이용하는 업체 말고도 여러 업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린 간단하게 서류 작성을 하고 잔금을 결제한 후 보트에 올라탔다. 보트에는 우리 가족 외에 젊은 남녀 커플 2팀, 노년의 관광객들을 포함해 총 10여 명 정도였다. 그중 이탈리아인은 남녀 커플 1팀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출신이었다. 젊은 남자 직원이 보트를 운전하며 가이드를 해주었는데 영어로 진행을 해서 반의 반 정도밖에 못 알아 들었다. 여태껏 살면서 어렸을 때 배워둘 걸 후회하는 게 딱 두 개 있는데, 바로 영어와 수영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보트를 타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껴졌던 게 그 두 가지였다. 난 너무 아쉬워서 괜히 유라에게 아빠처럼 후회하지 말고 어렸을 때 영어랑 수영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 폭격을 날리고 말았다.

그동안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봤다면 지금은 바다 위에서 육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폴리냐노 아 마레는 유난히 해안절벽이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보트에서 바라본 육지 풍광도 매우 멋졌다. 육지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였고, 또 우리는 그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해안절벽을 따라 항해를 하다 보면 절벽 밑에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있어서 보트를 타고 그 안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풍파를 겪으며 멋진 모습으로 변모한 기암석들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바라본 폴리냐노 아 마레도 매우 아름다웠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라마 모나킬레 해변도 보였다.
절벽 아래 자리한 쥐구멍 같은 동굴들.

보트 위에서 폴리냐노 아 마레 동굴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그로타 팔라체세'(Grotta Palazzese)도 볼 수 있었는데 가격 이슈로 차마 예약을 못 했던 곳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식당 아래에 동굴이 있어서 위를 올려다보면 식당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식당 주인 개인 소유라 동굴 안으로 들어가진 못 한다고 했다. <텐트 밖은 유럽 - 로맨틱 이탈리아>에서는 거기까지 들어갔었는데 그 이후에 뭔가 바뀐 모양이다. 아무튼 프로그램을 보면서 궁금했던 곳인데 눈앞에서 들어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절벽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한 '그로타 팔라체세' 식당은 호텔도 같이 운영하는 듯했다. 하지만 무서운 가격과 기대 이하의 맛으로 리뷰가 그닥 좋지는 않았다.

우린 폴리냐노 아 마레 구시가지 앞바다를 벗어나 조금 더 멀리 나아갔다. 처음 보트를 탈 때 자리가 없어서 아내와 유라는 뒤쪽에 타고 나는 맨 앞에 앉았는데, 넓은 바다로 나아갈 때 보트가 속도를 내면서 선수가 바다에 튕기며 엄청 물보라가 쏟아졌다. 덕분에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흠뻑 젖어 버렸다. 직원이 적재적소에 멋진 음악을 틀어줬는데, 보트가 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는 존 폴 영의 <Love Is In The Air> 틀어주었고, 도메니코 모듀노의 동상이 있는 광장 앞에서는 직원이 센스 있게 그의 대표곡인 <Nel blu, dipinto di blu>를 틀어줬다.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잔잔히 흔들리는 보트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멋진 풍광과 사랑하는 가족까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시간이었다. 낭만 치사량 한도초과!

Volare oh, oh~ Cantare oh, oh~

앞바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그로타 팔라체세 식당 앞바다로 돌아와서 보트가 멈췄다. 비교적 잔잔한 바다 위에서 바다수영을 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보트들도 그곳에서 멈춰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 보트에서도 몇몇을 빼고 바닷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나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생존본능으로 간신히 자제했다. 여름마다 바다나 호수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답게 다들 자연스럽게 수영을 잘했다. 어렸을 적 수영을 좀 더 열심히 배울걸, 다시 후회가 밀려들었다.

잠깐의 수영 시간이 끝나고 직원이 조그만 컵에 와인을 담아 돌렸고 유라에게는 과자를 주었다.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마시는 와인은 품종과는 상관없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약 90분 정도의 항해를 마치고 우린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처음 계획한 게 아니라 당일 오전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보트였지만 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항상 바라만 보던 바다 풍경 속에 직접 뛰어들어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서 바라본 폴리냐노 아 마레도 매우 아름다웠다. 점점 이 도시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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