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여행] 그 골목의 끝엔 항상 바다가 있다

by 홍윤표

오늘은 여행 계획을 하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해수욕장을 가기로 했다.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 모노폴리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남하하면 나오는 '칼레테 디 토레 친톨라(Calette di Torre Cintola)'라는 해수욕장인데, 과거에 채석장으로 사용하던 곳에 바닷물이 들어차서 독특한 형태의 자연 수영장이 된 곳이다. 애초에 이탈리아 여행의 시발점이 된 정승민 작가의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언급된 곳인데, 글만 읽었는데도 꼭 한 번 가고 싶다고 다짐할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풀리아 지방의 수많은 해수욕장 중 단연 1순위로 구글지도에 저장해 놓은 곳이다.

아침은 간단하게 숙소에서 컵밥과 사발면으로 때우고 바로 출발했다. 차로 대략 20분 남짓 거리인 칼레테 디 토레 친톨라에는 따로 주차장은 없고 그 옆의 널따란 공터에 자유롭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구글 지도 리뷰를 보다가 어떤 사람은 여기에 차를 도둑맞았다고 해서 불안했는데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그냥 주차를 했다. 우리는 바다 수영을 할 때마다 아예 수영복을 입고 가서 수영을 한 후 차로 돌아와 미리 가져갔던 옷으로 갈아입곤 했다. 공터에 주차를 하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트렁크 뒤에서 자유롭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주차한 공터에서 칼레테 디 토레 친톨라까지는 아주 조금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자잘한 유리조각이 있는 곳들도 있어서 샌들과 아쿠아 슈즈로 걷는 우린 발아래를 조심하며 걸어야 했다. 이탈리아의 해수욕장은 깨끗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담배꽁초와 깨진 맥주병, 휴지 등으로 매우 지저분했다(구글 리뷰에도 더러운 해변에 대한 불평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마 관리가 되는 해수욕장이 아닌 자유롭게 사람들이 찾는 해변가가 많아서 더 그런 듯했다. 그래도 다행히 바닷물은 깨끗해서 정작 물놀이를 할 때는 큰 불폄함은 없었다.

칼레테 디 토레 친톨라는 글로 볼 때 보다 실제로 보니 더 매력적인 곳이었다. 채석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라서 직사각형으로 잘린 바위들과 그 사이로 자연스럽게 채워진 투명한 바닷물이 독특한 천연 수영장을 만들어냈다. 평일이지만 가족 단위 혹은 혼자서 놀러 온 현지인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우린 적당한 곳에 짐을 내려놓고 물로 천천히 들어갔다. 바닥이 제법 미끄러워서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수온은 적당했고 깊이도 유라가 놀기에 딱 좋았다. 거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발이 안 닿을 정도로 깊어지는데 물이 투명해서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위험하진 않았다.

우리가 조심스레 바닷속에 물을 담그자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젊은 이탈리아 남성이 와서 말을 걸었다. 이곳은 꽤 유명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관광객은커녕 현지인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런 곳에 우리가 오니 조금 신기했나 보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물어본 그는 여기가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말했다. 난 진심을 다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말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자신의 동네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주변을 보니 그뿐 아니라 노신사와 젊은 여성이 각자 혼자 와서 조그만 비치 타월이나 접이식 의자를 들고 와 책을 읽고 물놀이를 하며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만약 이런 동네에 산다면 평일이라도 조퇴를 하거나 하루 휴가를 내고 놀러 와서 여유롭게 휴식을 만끽할 수 있을 텐데.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동안 휴양지를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껏 가본 곳 중에서 이탈리아 바다가 단연 물고기가 많았다.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은 없지만 무리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어서 스노클링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내와 유라는 얕은 곳에서 물장구를 치고 나는 좀 깊은 곳으로 가서 수영을 했다. 네모 정연한 바위벽들이 파도를 막고 적당한 수위를 만들어줘서 아주 신나게 바다수영을 즐겼다.

버려진 채석장에 투명한 아드리아해가 들어와 독특한 천연 수영장을 만들었다.

두 시간 정도 열심히 물놀이를 하고 오후 1시쯤 우린 물에서 나왔다. 수영복이 홀딱 젖었지만 차까지 가는 길에 뜨거운 태양이 우리의 옷을 어느 정도 말려주었다.

차에서 후딱 옷을 갈아입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좀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Fasano란 마을에 제법 큰 대형마트가 있어서 그리로 가기로 했다. 생수와 맥주, 유라 과자와 빵 등을 사고 나니 이미 오후 2시를 훌쩍 넘겼다. 이탈리아에 와서 불편한 점이라면 애매한 오후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우린 항상 오전 일정을 끝내면 2~3시쯤 되는데 이 시간에 영업 중인 식당을 찾는 게 매번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열심히 구글지도로 영업 중인 식당을 검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곳이 마트 바로 앞에 있는 맥도널드였다. 여기까지 와서 맥도널드를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언제 또 이탈리아 맥도널드에 와보겠냐며 셀프 세뇌를 하고 갔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주문을 했는데 재료 본연의 맛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식문화의 연장선인 건지 맥도널드 햄버거가 우리나라에 비해서 맛이 조금 심심했다. 그래도 물놀이를 한 후라 맛있게 먹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고 물놀이하느라 지침 아내는 낮잠을 자고 유라는 과자를 먹으며 패드로 넷플릭스를 봤다. 난 수영복을 간단하게 손빨래하고 베란다에 널어놓은 뒤 유라 옆에 앉았다. 그러다가 저녁때까지 숙소에서만 있는 게 좀 쑤셔서 혼자 산책하러 나갔다.

어제 셋이서 함께 돌았던 폴리냐노 아 마레 구시가지를 오늘은 혼자 돌았다. 열성 관광객 모드로 전환해서 구시가지 골목골목을 누비며 이리저리 구경하고 열심히 사진도 찍었다. 라마 모나킬레 해변을 찍을 수 있는 뷰포인트가 두 군데 있는데, 한 곳은 어제 갔던 부르봉 다리(Ponte Borbonico su Lama Monachile)이고 다른 한 곳은 구시가지로 들어가서 좁은 골목을 누비다가 나타나는 'Belvedere su Lama Monachile'라는 전망대다. 부르봉 다리가 도시에서 해변을 바라다보는 장소라면 'Belvedere su Lama Monachile' 전망대는 바다 방향에서 해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전망대까진 아니고 골목 끝에 있는 조그만 공터에서 난간에 기대어 보는 게 전부다. 한때 인스타에서 유명했던 라마 모나킬레 해변의 사진이 바로 여기서 찍은 것이다.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가니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거기에 섞여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곳을 직접 내 눈으로 보니 감개무량했다. 난 사진을 찍고도 혼자 거기에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풍광을 감상했다. 절벽과 오래된 건물들 사이 움푹 들어간 해변의 모습은 마치 신이 모래 장난을 하며 살며시 한 움큼 파내어 만든 비밀의 장소 같았다.

유명한 관광지나 소문난 맛집, 흥행하는 영화나 인기 있는 드라마 등 입소문으로 들은 것들은 이미 기대치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망을 하기 쉽다. 하지만 이곳은 실망은커녕 오히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라마 모나킬레 해변. 사실상 이 풍광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혼자서 흥분을 삭이고 멋들어진 유럽의 오래된 도시를 정처 없이 걸으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제껏 혼자 여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가족끼리 여행을 와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혼자 산책하며 관광객들 사이를 누비고 멋진 풍광을 원 없이 감상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아름다운 골목과 활기찬 사람들로 북적이는 폴리냐노 아 마레. 오래된 도시의 느긋한 산책자가 된 기분에 심취하는 동안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난 바다를 마주한 해변 산책로의 조그만 바에서 맥주와 나초를 시키고 앉았다. 아내와 유라가 저녁 먹으러 나와서 합류하기까지 맥주를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골목길을 거니는 동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맥주와 나초를 먹으려 아내와 유라를 기다렸다.

우린 어제 돌아다니면서 봤던 큰 골목길의 줄지어 늘어선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에 많아서 거의 대부분 대기가 있었다. 대부분 야외 테이블에 앉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혹시나 해서 안에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니 운이 좋게도 빈자리가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직원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서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곧바로 "안녕하세요."라는 유창한 한국말이 되돌아왔다. 풀리아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한국인이 꽤 오는 것 같았다. 우린 유쾌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서 유라의 오레끼에떼 외에 감자 요리를 두 개 정도 주문했다. 이탈리아까지 와서 맨날 맥주만 마실 순 없으니 와인을 먹기로 하고 직원에게 추천을 받아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한국인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센스쟁이 직원이 먼저 우리에게 나눠먹을 앞접시가 필요한지 물어봤다.

음식은 매우 훌륭했다. 특히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직원이 추천한 화이트 와인은 매우 맛있어서 어느새 한 병을 후딱 해치웠다. 식사를 거의 마무리할 때쯤 시차와 오전의 물놀이의 여파로 이미 졸음이 쏟아진 유라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거의 눕다시피 조는 유라가 안쓰러워 우린 얼른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탈리아에 와서 감자 음식을 은근히 많이 먹었다. 맛이 괜찮아서 한국에 오면 찾아보려고 와인 사진을 찍어두었다.

폴리냐노 아 마레의 활기차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밤거리를 뒤로 하고 우린 조용한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했다. 난 혼자 베란다에 앉아 병맥주를 들이키며 멀리서 들리는 밤바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은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생각했던 버킷리스트를 두 개나 실행했다. 오래된 채석장에서 수영을 하고 사진으로만 보며 꿈꿨던 라마 모나킬레의 해변 풍광을 직접 눈에 담았다. 아름다운 마을의 미로 같은 도시도 혼자 만끽하며 느긋하게 산책했다. 온몸으로 아드리아해의 해풍과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시간을 머금었다.

폴리냐노 아 마레. 그 골목의 끝엔 항상 바다가 있었다. 내가 꿈꾸던 바다.

숙소로 돌아오며 문 앞에서 찍은 밤하늘. 달이 마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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