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여행] 네모 반듯 천연 수영장에서 물놀이

by 홍윤표

폴리냐노 아 마레의 숙소에서 짐을 푼 후 우린 점심을 먹기 위해 구시가지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인 아파트먼트가 해변길에 자리하고 있어 조그만 찻길을 건너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바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유라와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바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숙소 앞 찻길을 건너(이탈리아에선 신호등이 있든 없든, 보행 신호등이 빨간색이든 아니든 운전자들은 무조건 사람이 보이면 서야 한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탈리아에서는 이게 정말 철저하게 지켜졌다. 아내는 찻길을 언제 건너야 할지 불안해했는데 우리가 길가에 서있기만 해도 차들이 알아서 서줘서 매번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었다) 조그만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아담한 해수욕장이 펼쳐졌다. 마치 조그만 골목길이 바다를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듯했다. Cala Paguro라는 이름의 작은 해변이지만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여기저기 비치타월을 툭툭 깔아놓고 자유롭게 바다를 즐기는 이탈리아인들. 나도 당장 그들 속에 섞여 들고 싶었지만 일단 배를 채우기로 했으니 푸른 바다를 눈에 가득 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20250907_124832.jpg 숙소 앞에 있는 조그만 해수욕장
20250907_125434.jpg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만 봐도 두근거렸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매우 독특한 모양의 해수욕장이 눈에 띄었다. 마치 일부러 네모나게 잘라놓은 것처럼 생긴 자연 해수풀장이었다. 수위도 매우 낮아 보이고 파도도 치지 않아서 유라랑 놀기에 적합해 보였다. 궁금해서 구글지도로 검색해 보니 이름이 piscina natural, 말 그대로 천연 수영장이란다. 난 신이 나서 이따가 저기 먼저 가보자고 유라에게 말했다.

중심가로 가면서 해안길을 죽 따라 걸었다. 바위절벽과 기암석들로 이루어진 해안선은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었다. 우린 정신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다. 저 멀리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 절벽 위에 놓인 오래된 도시의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코발트블루의 아드리아해와 마치 우유 비누로 빚어진 듯한 오래된 건물들의 조합은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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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선 위로 펼쳐진 구도심지의 건물들이 멋진 풍광을 자아냈다.

드디어 구시가지 중심가로 들어섰다. 오후 1시. 한낮의 태양이 나른하게 광장을 내리쬐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사람들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광장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도메니코 모듀노의 동상이 먼저 눈에 띄었다. 폴리냐노 아 마레 하면 그 유명한 절벽 해안 사진과 바로 이 동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만큼 유명한 도시의 심벌이었다. 팔을 벌리고 있는 도메니코 모듀노의 동상인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팔을 벌리고 이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된다. 도메니코 모듀노는 폴리냐노 아 마레 출신의 이탈리아의 가수이자 배우인데, "Nel blu, dipinto di blu"라는 곡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제목은 매우 생소하지만 가사의 후렴구인 " Volare ~"라는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곡이다.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도 올랐다고 한다. <텐트 밖은 유럽 - 로맨틱 이탈리아>에서도 출연진들이 이 동상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와서 보게 되니 그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게 됐다.

우린 광장에 자리한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야외석에 앉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실내로 들어갔다. 메뉴판은 따로 없었고 QR코드를 통해 휴대전화로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여행 전 읽은 책에 따르면, 유럽 특히 이탈리아는 의외로 보수적이고 아날로그를 선호해서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과 온라인이 성행하면서 배달음식과 비대면 주문 방식이 많이 퍼졌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휴대전화로 주문하는 형식의 식당이 꽤 많았다.

이 식당에서도 주문을 위해 휴대전화 인터넷 창을 켰는데 와이파이는 물론 없었고 심지어 데이터 연결도 잘 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휴대전화를 들고 끙끙거리다 결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어디론가 가더니 자기 휴대전화를 가져와 이걸로 주문하라고 흔쾌히 빌려줬다. 직원의 휴대전화는 인터넷 연결이 매우 빨랐고 우린 게가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와 문어 요리, 홍합 튀김 같은 해산물을 주문했다. 이곳은 해산물 특히 문어가 꽤 유명하다고 해서 주문해 봤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양념과 조미료가 최소한으로 들어가서 매우 담백한 이탈리아 요리가 내 입맛에 꽤 잘 맞는다.

20250907_131256.jpg 도메니코 모듀노의 동상(Monumento a Domenico Modugno). 나름 한가한 광장에서 그나마 제일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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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냐노 아 마레의 식당에서 주문한 점심 식사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짐 정리를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그 새 청소가 말끔히 완료되어 있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아파트먼트라서 공동 현관 키와 현관문 키가 별도로 주어졌다. 부엌 겸 거실에는 식탁과 침대 겸 소파, TV가 있었고 거실에서 이어진 발코니는 조그만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해안도로와 바닷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침실에도 작은 TV가 있었고 통유리가 있어 볕이 아주 잘 들었다. 세탁실도 있었는데 세탁기는 이용할 수 없었고 다만 빨랫비누와 수도가 있어서 손빨래를 할 수 있었다.

유라는 아까 점심을 먹을 때부터 빨리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아내는 숙소에서 조금 쉬고 나와 유라는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아까 봤던 집 앞 Cala Paguro 해수욕장으로 갔다. 근처 적당한 곳에 비치타월을 깔고 우린 바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폴리냐노 아 마레의 바다는 모래가 아니라 자갈과 바위로 이뤄졌기 때문에 물속에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보기보다 물살이 은근히 세서 유라가 물놀이하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우린 결국 물에서 나와 아까 봐두었던 네모난 자연 해수풀장으로 옮겼다.

기암들로 이루어진 바위를 따라 걷는 게 쉽지 않지만 막상 해수풀장 안으로 들어가니 유라와 함께 놀기에 딱 좋았다. 물도 따뜻했고 깊이도 적당했으며 무엇보다 물속에 해초와 바위가 많아 물고기들이 엄청 많았다. 우린 물안경을 끼고 물고기도 구경하고 신기하게 생긴 돌과 조개껍질을 모으며 한참을 물속에서 놀았다. 모래가 아닌 돌과 바위로 이뤄진 해수욕장이라 이동하기에 쉽지 않지만(이곳에서 아쿠아 슈즈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만큼 물고기가 많아서 오히려 유라에겐 이 편이 더 재밌는 것 같았다. 바위 위에도 올라가 보고 물속에서 물고기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슬슬 지고 배도 슬슬 꺼졌다. 멋진 자연 해수풀장에서의 수영을 마치고 우린 젖은 몸을 비치타월로 적당히 닦고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20250907_130054.jpg 원래 건물이 있던 자리인 걸까. 자로 잰 듯 반듯한 네모 모양의 천연 수영장. 깊이도 적당하고 물고기도 많아서 유라와 놀기에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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