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알베로벨로를 떠나는 날이다. 아침에 마지막 조식을 먹고 짐을 싸며 정들었던 고양이와 작별 인사를 했다.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가는 숙소마다 고양이가 있어서 떠날 때 고양이들과 헤어지는 게 정말 아쉬웠다. 특히나 유라가 많이 아쉬워했다. 아름다웠던 숙소와 함께 여느 강아지들보다 살가웠던 고양이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매번 조식을 갖다주고 세탁실의 잃어버린 양말도 챙겨주었던 직원이 맞이했다.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쯤 보이는 여성인데,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자기도 조만간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언제 가야 가장 좋은지 물어봤다. 난 되도록 여름은 피하라고, 여름의 한국은 너무 더우니 봄이나 가을쯤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는 김치 같은 매운 음식도 아주 잘 먹어서 한국 음식도 맛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난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이니까 꼭 한 번 오라고 강추했다. 직원과 인사를 하고 숙소를 빠져나와 한참 운전을 하다가 캐리어에 들은 양념김치가 생각났다.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니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를 선물로 줄걸 그랬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혼자 멋대로 정한)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다. 숙소는 이제까지 묵었던 곳들과는 다르게 수영장도 없고 직원도 상주하지 않은 일반 아파트먼트를 빌렸다. 폴리냐노 아 마레의 숙소를 정할 때 무조건 주차공간이 있는 곳을 우선시했는데, 주변 골목이나 근처 무료 주차장을 이용하게끔 하는 숙소가 꽤 있었지만 무거운 캐리어들을 끌고 주차공간에서 숙소까지 이동해야 하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지만 재수 없는 경우 차량절도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하여 무조건 숙소 내 주차공간이 필수였다.
그다음으로는 주요 중심가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해야 했다. 폴리냐노 아 마레는 내가 이번 여행을 다짐한 아주 결정적인 여행지이기 때문에 동네 마실 다니듯이 가볍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오전에는 주변 관광지 여행을 하고 오후에는 폴리냐노 아 마레 중심가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편한 마음으로 즐기고 싶었다(물론 여기엔 음주도 포함된다).
그렇게 예약한 곳은 중심가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이었고 길 건너 바다를 면한 곳이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호스트와 왓츠앱으로 소통을 했는데 전 숙소의 체크아웃 시간과 다음 숙소의 체크인 시간 사이에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혹시라도 얼리 체크인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이른 시간에는 안 되고, 청소를 하는 동안 짐을 맡겨 놓을 순 있다고 했다. 우린 일단 폴리냐노 아 마레로 가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조금 때우다가 숙소로 가기로 했다.
그동안 이탈리아 주차장에서 주차 기계로 조금 애먹었던 경험이 있다. 처음 레체에선, 주차권이 나오지 않아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사무실에 있던 직원이 그냥 가도 된다고 말해줘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로꼬로톤도에서는 카드 결제가 안된다는 문구를 몰라봐서 무작정 나가려다가 직원이 알려줘서 역시 무사히 빠져나왔다. 마테라에서는 아예 주차 기계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직원이 안내하며 결제까지 해줘서 또 역시나 무사히 빠져나왔다. 말 그대로 실수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는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뒤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익혔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들이라 그들도 무척 애를 먹으며 어찌어찌 주차를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차요금을 선불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얼마나 있을지 감으로 시간을 정한 다음 그에 걸맞은 요금을 먼저 지불한 뒤에 주차권을 차량 대시보드에 올려놓으면 된다(너무 적게 넣으면 중간에 다시 와서 주차권을 발권해야 하니 아예 처음부터 넉넉하게 시간을 잡는 게 마음 편하다). 그럼 정기적으로 주차요원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체크한다고 하는데 사실 돌아다니는 직원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어쨌든 이번에는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주차권을 뽑아 대시보드에 올려놓고 가장 가까운 카페를 찾아갔다. 야외 테이블이 멋들어진, 조그만 서점과 같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우린 카푸치노와 풀리아 지방의 명물이라는 카페 레체체(Caffè leccese)를 마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으면 카페 레체체나 카페 샤케라토를 마시면 된다고 한다. 아니면 메뉴에 Caffè 와 ghiaccio(얼음) 이 같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하면 된다. 어쨌든 우린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조금 산책을 한 뒤 다시 차로 이동하여 숙소까지 갔다.
숙소에 가니 호스트가 아파트먼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트는 인심 좋아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호스트가 반갑게 인사하며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 하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호스트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집마다 정해진 주차 자리가 있어서 나에게 몇 번으로 가서 주차하면 된다고 했고, 그동안 아내와 아이는 호스트를 따라 올라가 방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정된 장소에 주차를 하고 방으로 올라가니 아내가 열심히 호스트의 설명을 듣고 있었고, 한쪽에서 직원 두 분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계셨다. 호스트는 설명을 마치고 우리에게 청소가 끝나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리니 그때 오라는 말을 남기고 쿨하게 퇴장했다. 우린 한쪽에 짐을 놓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섰다. 난 출입문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 뒤돌아가서 식탁에 적은 금액의 팁을 올려놨다. 우리가 일찍 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청소를 하는 그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선 팁문화가 없다고 하지만 성의 표시 정도는 해야겠다 싶었다. 직원은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 콤비였는데 얼핏 보기엔 부녀지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팁을 올려놓고 고맙다고 하자 처음에 남성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여성직원이 내 말을 알아듣곤 고맙다고 했다.
숙소를 나서 폴리냐노 아 마레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종착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흥분되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이 여행의 끝이 슬슬 보이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는 만큼 후회 없이 즐기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도시에서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으로 부푼 가슴을 억누르며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