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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Mar 30. 2021

아웃도어에 열광하는 DNA(2)

DNA의 자기 기만 프로그램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도어' (리리 퍼블리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아웃도어

한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만약에 6만 년 전 현생 인류가 유럽 대륙에 진출했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멸종하거나 퇴각하여 아프리카의 척박한 초원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주인공이 바뀐 지구의 인류 모습은 어땠을까? 그래서 이미 서남아시아까지 진출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이 호모 사피엔스를 대신하여 오늘날 지구의 문명을 이루고 있다면 아웃도어 문화는 또한 어떻게 변했을까? 


몇몇 고고학적 증거들로 인해 네안데르탈인들도 ‘문화’를 만들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도 현생 인류처럼 죽은 자를 추모하기 위한 매장 문화가 있었고, 다친 자를 무리에서 돌보았으며,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심지어 황토나 불에 탄 나무를 이용하여 안료를 만들고 특정 표식이나 그림을 벽에 그려 놓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알려진 스페인의 동굴 벽화는 무려 65,000년 전에 그려진 것이고,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진출하기 전이었으므로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1]  그렇다면 다시 6만 년이 흘러 오늘날 그들도 문자를 포함한 문명을 이루었을 것이고, 분명히 보다 풍부한 문화예술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 문화예술에는 생존 활동 이외 그저 즐거움을 쫒는 유희 문화도 있었을 것이고, 당연히 그 중에는 아웃도어 활동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현대식 복장으로 연출한 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 Neanderthal Museum)

이제 이 가벼운 상상을 마무리하자. 우리는 이미 I-3에서 호모사피엔스의 대륙 진출과 네안데르탈인들의 멸종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그들의 신체적 특징도 알아보았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아웃도어 활동을 들라면 당연히 하이킹과 트레일러닝을 포함한 달리기일 것이다.[2]  그런데 오랫동안 걷고 달릴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에 비해 짧은 순간 힘쓰기에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의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면 가장 인기있는 아웃도어 활동은 아마도 근접 사냥을 모태로 변형된 씨름이나 레슬링와 같은 격투기, 두 다리를 이용한다고 해도 단거리 달리기, 무거운 돌 들어올리기 등을 원형으로 삼는 아웃도어 활동이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트레일 러닝이나 장거리 하이킹을 좋아할 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DNA의 자기 기만 프로그램과 러너스 하이

정상에 오르기 위한 등산이나 장거리 하이킹에서 매순간이 즐거움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위, 또는 추위와 발가락 통증과 벌레 물림으로 고통스러울 때가 더 많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는 다시는 산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다짐은 그때 뿐이다. 주말 북한산에 가보면 백운대나 위문 쪽의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고, 더러는 가파른 길에 투덜거린다. 그들 모두가 오늘, 처음 그곳에 왔을 리는 없다. 적어도 아웃도어 활동에서는 우리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인 것이다.  

DNA의 자기기만 프로그램 때문에 장거리 하이킹을 하는 것은 아닐까?

높은 산에 오르거나 먼 길을 걷고 나면 흔히 성취감이라는 표현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 마라톤과 같은 달리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러너스 하이는 극한적인 육체적 활동으로 엔돌핀을 증가시키고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등의 물질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피로감과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계속 달릴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도파민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있는 신경전달물질로서 주로 즐거움, 쾌락, 성취감 등을 주관한다. 이는 달리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수영, 사이클, 하이킹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도요새가 10,000km를 날아서 겨울을 나고, 고래가 해마다 20,000km를 헤엄쳐서 새끼를 키우는 것은 종의 번식과 DNA의 전달을 위한 것이다. 인류를 제외한 어떤 동물도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기 위해 재미삼아 하릴없이 뛰거나 날거나 헤엄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칫 몸이 망가질 수 있는 격렬하고 지속적인 육체 활동에서 피로감과 고통 대신 쾌감을 느끼도록 각종 호르몬 등 신경 물질을 분비하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단계에서 수백만 년 동안 생존 투쟁을 벌여온 인류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근육도 없는 인류의 조상들은 오랫동안 달려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체의 과부화 상태를 스스로 속이도록 각종 신경물질들을 분비해야 했을 것이다. 개체의 생존은 후손들에게 DNA를 전달하기 위한 것일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래서 개체의 감각과 기억은 수백만 년 동안 코딩된 DNA의 자기기만 프로그램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1] 내셔널지오그래픽, 2018년 2월 22일 기사 ‘World's Oldest Cave Art Found—And Neanderthals Made It’기사 참조(https://www-staging.nationalgeographic.com/news/2018/02/neanderthals-cave-art-humans-evolution-science/)

[2]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아웃도어 활동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SNS 태그를 검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SNS의 하나인 인스타그램에서 아웃도어 활동과 관련하여 태그 검색을 하면 아래와 같은 게시물 숫자가 나타난다. (2020년 9월 기준)

#running 6878만 #hiking 5838만 #camping 3137만 #surfing 3104만 #cycling 2870만 #backpacking 1456만 #trailrunning 115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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