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같아서 애매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은 순간
엊그제 약속을 파투 낸 친구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저번 글에 썼던 그 친구다. 난 좋으니까 약속을 만드는데 걘 날 그만큼 생각하지 않는 걸까. 저녁엔 짝 선생님과의 통화로 이 바닥을 기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어 강사는 연예인 같다. 아무리 잘해도 다음 방송에 날 가차 없이 안 부를 수 있다.
기대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도 일도 괜히 섭섭하네요. 그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다시 열었다. 1달가량 치료하시고 여시는 구나. 갑작스러운 공지라 놀랐지만 타이밍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카페는 걔가 알려준 곳이다. 처음 왔을 때 좋기도 했지만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데자뷰 같은 느낌. (데자뷰가 더 입에 붙는다) 그 뒤로 종종 와서 일도 하고 쉬었다. 디저트가 맛있기도 한데 편안하다.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 여기 오면 별 것 안 해도 쉰 것 같고 머리에 꽉 찬 화도 가라앉는다. 차분해지면서 이성적으로 변한다. 왜 그럴까? 걔가 추천해줘서? 여기 터가 좋아서? 디저트가 맛있어서? 모르겠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걔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나도 알아. 애매한 것만 교류했다는 걸. 근데 이상하게 직감이 생각난다. 처음 한국어 강사 면접 보러 문 열고 들어갈 때 느낀 정신적인 맑음. 긴장해서 실수했는데도 되겠다는 느낌. 칠판에 판서할 때마다 이 일을 겪어본 것 같았다. 학생들과 얘기할 때마다 이미 해본 것 같은 데자뷰. 다른 학교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2학기까지만 일할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나?
걔도 마찬가지다. 2년 만에 만났을 때 느낀 이상함. 서로 말없이 마주치기만 했던 찰나 같은 5초. 짧은 순간에 뭔지 모를 게 지나간 감정들. 느리게 흘러가는 데자뷰 같은 느낌. 아, 이건 데자뷰라고 말할 수 없나. 그럼 이건 뭐지.
아무튼, 사소하고 작은 느낌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여운이 크게 남는다. 무슨 감정인지 알고 싶지만 파헤칠 힘이 없어서 흘러가는 대로 살면서 타이밍을 기다릴 뿐….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애매하다. 제대로 말할 수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 답답하니까 그냥 끄적이기만 한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 겪다 보니까 내가 느끼는 것들이 이유가 있긴 한 것 같다. 모스크바에서도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더 믿고 싶어 져. 기대하진 말되 막연한 믿음은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