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막달의 긴장과 설렘에 대하여
22주쯤 쓴 글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브런치를 쓰지 못한 채 40주가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태생적으로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나 임신과 출산은(그리고 앞으로 겪을 육아까지..!)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의 일이었기에, 사서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20주쯤 지나면서 입덧도 완전히 사라졌고, 강력했던 코로나 기간이 겹치면서 출산휴가 전까지 재택근무를 쭈욱 할 수 있게 되었다 :)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컨디션도 좋아지면서, '엄마'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달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해봤다. 다이어리에 숫자를 매겨서 출산 전까지 차근차근 해내가는 걸 목표로 삼았다.
때로 지인에게 내 4개월짜리 계획을 설명하면, 매번 일을 벌이고자 꼼꼼하게 단계별 계획을 짜는 것에 놀라 혀를 내두르곤 한다. 때로는 계획을 짜고 행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 질문을 듣기도 한다.
'계획'을 하나의 목적지로 삼은 후, 내비게이션처럼 참고하면서 하루하루를 컨디션에 맞춰 보낸다.
걱정이 많기에 내 나름의 안전망이 중요했고, 그 것은 언제나 계획일 뿐.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자 계획을 세우고 행하는 것이니, 매일 나의 컨디션에 맞춰서 하루하루를 내가 좋아하는 일로 채워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약 30여 년 간 계획을 세우고 행하면서 느낀 건 똑같았기에.
'인생은 뒤통수의 연속이고, 절대로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계획을 세우면서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걸 안다.
나를 반만 아는 사람들은 계획하는 나를 보며 '피곤하겠다', '계획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받지 않냐.' 하지만,
의외로 나는 타격 없이 계획을 수정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내가 세운 계획이 10개라면, 그중에 절반만 달성해도 잘했다는 것 역시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다.!)
어차피 계획의 목적지는 변하지 않고 가는 길만 때에 따라 수정되는 것이니,
마치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다시 길안내를 해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방향성'만 잃지 않으면 될 뿐이라 생각하며.
계획적이나 합리적이려고 노력하며, 욕심이 많으나 좌절하기보다는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을 인정하며.
바쁘게 시간을 쪼개어 집중하며 썼고 지금까지 아래와 같은 목표를 두고 각 목표에 알맞은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워갔다.
1. 태교여행
2. 아기 관련 공부
3. 건강 지키기 : 코로나 및 임당 검사 조심
4. 재테크 공부
5. 자격증 시험공부
6. 글쓰기_공모전 접수
7. 회사 업무 인계
8. 아기용품 준비
9. 브런치 글쓰기
고3 수험 생활 이후로, 이렇게 매일 그리고 자주 다이어리를 펼쳐보며 할 일 체킹 한 적이 없었는데..
MSG를 좀 더 보태자면 다이어리가 헤질 정도로 열심히 썼고 그 결과 나름대로 목표를 달성했다.
1. 태교여행 : 동해바다-맛집 투어
2. 아기 관련 공부 : 똑게 육아, 아들의 뇌 등 독서 & 맘 똑 티브이 등 유튜브 & SNS 정보 검색
3. 건강_배우자의 코로나 양성 : 다행히 집을 분리해 생활하면서 나와 아기는 아직 음성! :)
4. 재테크 공부 : 부동산과 주식 서적 독서 후 요약정리 & 카페 및 정보글 정리
5. 자격증 시험공부 : 올해 말 시험 준비 중_인강과 문제풀이 공부-ing
6. 글쓰기 : 중장 편 글 공모전 접수 완료
7. 긴 휴직 전 업무 인계 : 인수인계 완료
8. 아기용품 준비 : 핫딜과 당근 거래, 지인 나눔 활용해 준비 완료
비록 브런치 글은 꾸준히 쓰지 못했지만, 임당 검사도 이상 없이 통과했고 +14kg로 평균 범위 내에서 살이 찌도록 관리했다. 날이 더워지기 전까지 집밥도 잘 챙겨 먹었고, 다행히 아직까지 몸의 튼살 하나 없이 볼록한 배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점심과 저녁에 산책을 했고, 37주가 될 무렵 날이 더워지면서는 짐볼 운동을 하며 자연진통을 기다리고 있다.!
9개 중 8개를 달성했으니, 대견한 듯싶다가도 6월 막달이 되자 지금껏 뾰족하게 세워둔 모든 긴장의 날이 무디게 흘러내리는 듯했다.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쉬다가 점심을 먹고 산책하고 낮잠 자고, 일어나서 씻고 공부하다 퇴근한 남편과 수다 떨고 산책한다. 그리고 각자 1~2시간 자유시간을 보내는데, 스트레스를 날릴 겸 게임을 하는 남편을 두고 나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매일 비슷한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런 생활이 2~3개월을 반복하자 우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피하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혼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외로움은 커져갔고, 차라리 내 목표 달성에 집중해보자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보려고 하지만 성취감은 쉬이 얻어지지 않았다.
그 원인은 단순했다.
1차적으로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
가슴이 커지며 처지고 유륜이 커지며 까매진다. 겨드랑이와 목주름 역시 색이 짙어지고 임신선도 세로로 길고 두껍게 난다. 샴푸나 로션 성분도 혹여나 아기한테 해롭지는 않을지 먼저 살피는 처지다 보니, 파마도 네일도 피부관리도 할 수 없는 몸으로 살이 찌면서 얼굴에도 살이 붙었다.
길거리에서 예쁜 옷과 구두를 신고 빠르게 걷거나, 운동복을 입고 뛰는 내 또래의 여성을 보며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저 배가 나와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아프고 숨이 찬 임신부가 되어 있었기에.
나름 멘털을 잘 잡아왔다고 생각했으나, 끝내 막달이 되자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다.
그리고 2차전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강화되었다. 손 저림과 붓기 그리고 통증으로.
어릴 적 손에 전기 통하는 장난을 하는 것처럼 손끝이 저린 증상이 24시간 내내 느껴지며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면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붓기도 한다. 다리와 발은 코끼리처럼 부었고 밤이 되면 터질 듯한 발바닥의 주름이 펴지면서 간지럽고 아프기도 했다. 치골과 허리에 통증도 상당했고, 온몸에 소양증처럼 간지러운 기분이 확 돌 때는 미치게 온 몸을 긁기도 한다. 특히나 배가 나오면서 옆구리의 속근육이 쫙쫙 늘어나면서 찢어지는 기분이 찌릿하게 들 때가 많다. 그때만 되면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굳어버리는데, 3kg 넘게 큰 뱃속 아기는 뭐가 그리 바쁜지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태동을 보낸다. 내 방광과 갈비뼈를 차면서 말이다.!
몸이 거뭇해지는 건, 손 저림과 괜한 우울감이 생기는 건 전부 호르몬 때문이었다.
호르몬 밸런스의 변화로 멜라닌 색소의 생성량이 달라지는데, 이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이다.
이 때문에 몸이 거뭇해지고 배가 나오며 가슴이 커진다. 에스트로겐은 우울증에 매우 중요한 세로토닌의 작용을 조절한다. 특히 출산 후 급격한 호르몬 감소로 산후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이 때문이다.
또한, 근육과 인대가 벌어지는 릴렉신 호르몬 때문에 관절 마디마디가 벌어지면서 손 저림과 골반 통증 등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초여름의 더운 날씨와 우중충한 장마로 어디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갇히자, 우울함에 괜히 눈물 흘리기까지 했다.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3~4시에 잠들곤 했다.
심지어 배가 점점 커지니 자는 건 불편하고 화장실도 자주 간다. 밤에 못 자니 아침 늦잠을 자고 심지어 낮잠을 자고 나면 다시 그날은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잠을 못 자니 피로와 예민함도 커진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없고, 내 호르몬이지만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없다.
자궁 내의 아기가 안전히 출산을 하기까지 말이다. 이쯤 되니 슬슬 아기에게 묻고 싶어 진다.
"엄마 아빠는 준비가 다 되었는데, 언제 방 뺄 거니?"
프로게스테론이 떨어져야 젖 분비 자극 호르몬인 프로락틴과 함께 뇌하수체 후엽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40주 예정일이 된 지금, 나는 짐볼을 열심히 타며 뇌에서 옥시토신이 나오길 고대하는 중이다.
1시간 넘게 앉아 있지 못하는 부종과 통증 그리고 키보드 치기 어려운 저린 손가락 때문에 계속 공부나 글을 쓸 수도 없고, 마냥 짐볼을 타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계다. 코로나도 무시하고 친구를 만나러 다니기에도 배가 너무 나온 만삭인지라, 나는 어떻게 하면 호르몬을 이길 수 있을지 공부한다.
비타민D와 C 영양제를 챙겨 먹고, 디카페인만 고수하다가도 카페인이 든 음료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확실한.! 유도분만 일자까지 잡았다.
D-3..! 옥시토신과 같은 분만 촉진제를 사용하여 인위적인 자궁 수축을 통해 아기를 분만하는 것.
이제는 정말 너를 만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막달의 감정 기복을 겪으며 나는 호르몬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뭐라도 생산적으로 시간을 써보고자 계획도 한 번 짜고 공부나 글도 조금씩 쓰면서.
어쩔 수 없지를 습관처럼 반복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의식하면서.
그리고 미뤄두었던 브런치 글쓰기도 다시 시작하면서.!
임신 일기를 쓰던 예비엄마였다면, 이제는 육아일기를 쓸 엄마로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