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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Jun 27. 2024

6살 딸과 엄마, 스위스 2주 여행기 (3) 루체른

자갈밭 흙놀이터


내가 스위스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꼭 가보라고 한 도시가 바로 루체른이다.


취리히에서의 첫날은 평화로웠지만 ‘여기가 정말 스위스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건 루체른에 도착해서부터였다. 루체른 호숫가를 따라 유럽식 고풍스러운 건물과 리기산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이틀을 묵을 숙소 역시 루체른역 근처로 잡았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루체른 호수, 시내가 모두 지근거리다. 자 오늘은 우리 뭐 할까? 도시를 이동하는 날은 최대한 무리하지 않으려 해서 구글맵을 켜고 ‘playground’를 찾으니 웬걸, 호텔 바로 옆이 놀이터다.



이것이 유럽의 놀이터인가. 바닥이 자갈밭이다. 심지어 한쪽은 물장난까지 가능한 흙놀이터다. K엄마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빨래였지만, 그대로 두기로 한다. 이틀 묶는 동안 오가는 길에 이 놀이터를 꼭 한 번씩 들러 한참을 놀았다.


롸가 혼자 노는 동안에는 나도 최대한 휴대폰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큰맘 먹고 여행용 사진을 위한 디지털카메라도 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따 뭐 먹지’, ‘내일 뭐 하지 ‘ 무한 반복 셀프 미션에 계속 정보의 바다에서 고민해야 했지만…


이렇게 그냥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그 부모들을 관찰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기도 조부모들이 애를 많이 보는구나… 평일 낮에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아빠들은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일까?   


아니 가만 보니 아무도 휴대폰을 하지 않는다. 아이 사진도 찍지 않는다. 놀이터 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여기 부모들은 인스타그램도 안 하나? SNS는 결국 인생의 낭비가 맞는가?! 나는 여기 왜 와있고, 지금 뭣이 중요한가?


갑자기 나도 카메라 들기가 꺼려졌다. 남의 인생을 엿보며 자신을 채찍질하던 FOMO (Fear of missing out)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 모르겠다, 일단 젤라토를 하나 사 먹고 저녁은 근처 발길 닿는 곳에서 먹자. 어차피 양식 메뉴 거기서 거기다.


저녁 7시 반에 잠들어 이튿날 새벽 4시 50분 기상. 제법 시차가 맞춰지고 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아침 6시부터 루체른 호수 산책을 나섰다. 롸는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나고 자랐다. 근데 아무리 봐도 6살 데리고 혼자 여행하는 여자는 나밖에 없는 거 같다.



롸는 루체른에 와서도 호수의 백조들을 참 좋아했다. 이튿날에는 1시간짜리 유람선을 타고 루체른 호수를 한 바퀴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호수 수영이 가능한 근처 작은 물가로 가서 돗자리 펴고 누워 있기도 하고.



6월 초 스위스의 날씨는 사계절을 품고 있다. 아침에는 경량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가 낮에 내리쬐는 햇살은 22~25도에도 수영을 해도 될 만큼 열기를 내뿜는다.


호수물은 역시 얼음장이다. 잠깐 몸을 담그더니 아무래도 추웠나 보다. 근처에 마련된 수영장과 놀이터로 이동해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영어도 안되는데 독일어라 더 소통이 어려운 딸이 많이 아쉬워했다. 더 재밌게 놀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세네 시간이나 잘 놀았다.



아이가 커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면 앞으로 여행이 더 재밌어지겠지? 언어, 여행, 음악…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을 언젠가는 스스로 발견하길 바란다.


나도 스위스의 언어는 정말 낯설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어느 나라에 인접하냐에 따라 그 국가의 언어를 주언어로 사용한다. 내가 거쳐온 취리히와 지금 있는 루체른은 독일이 가까워서 독일어를 쓴다. 미국에서 7년 동안 20대를 보낸 나는 가끔 주변에서 들리는 미국인이나 영국인 여행객의 대화소리, 스몰토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맥주 한잔과 소시지, 감자튀김… 그냥 시간이 가는 대로 두었다. 아무 데서나 돗자리 피고 그냥 누워서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루체른 호수를 들렀다. 근처 작은 잔디 공원에 중년의 아줌마 두명이 롸 또래의 아이들을 위해 놀잇감을 잔뜩 풀어놓고 놀게 두고 있었다. 동양에서 온 이방인 모녀를 반갑게 맞이하곤 서투른 영어로 매주 수요일 오후에 오는 이벤트라고 귀띔한다.


‘저는 내일 떠나지만 복 받으실 거예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운 좋은 날도 있구나 싶었다. 롸는 다시 말 안 통하는 또래 친구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손짓 발짓으로 신나게 놀았다.


 

밥 먹고 씻자마자 힘들다더니 7시에 곯아떨어지는 너…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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