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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Nov 27. 2024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어


“믿을 수 없이 단순하고 끝없이 복잡한 운동. 그것은 영혼을 만족시키고 지성을 좌절시킨다.” -아놀드 파마



회사를 휴직하고 나서 좋아하(지만 잘 못하)는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 공과 채, 그리고 나 오롯이 연습장에서 사계절을 느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가 활동.


머릿속이 어지러울 땐 지하 동굴 속에 들어온 듯 앞이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멀쩡한 몸뚱이는 무기력한 정신에 가로막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무슨 죄인가 싶었다.


골프는 남편을 따라 결혼직후부터 시작했다. 우리 결혼즈음에 은퇴하신 시부모님은 고향에서 작게 스크린골프 가맹점을 시작하셨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애 낳으랴 일하랴 평범한 30대 워킹맘 사정상 여유롭게 즐길 스포츠는 못됐다. 무엇보다 네 명이 짝을 맞춰야 하는 규정상 지방에서 일하는 남편 외 같이 즐길 사람이 없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골프를 쳐서 구력이 나보다 월등하다. 결혼 9년 차, 서로의 장점보다 단점을 발견하고 ‘내가 고른 사람이 진짜 이 사람이 맞나’ 하고 가슴을 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뭔가 잘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다잡힌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둘이 종종 운동을 하러 간다.


게다가 우리 동네는 골프 8 학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골프장 접근성이 높다. 집에서 10~15분 거리에 드라이빙 레인지와 퍼블릭 골프장이 많다. 카트피, 캐디피, 그린피 모두 포함 4만 원이면 혼자서 조인해 6홀을 돌 수 있는 갓성비 필드도 존재한다.


이제 롸도 어느 정도 컸고, 집에만 종일 누워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채를 다시 잡았다. 연습장만 다니다 최근에 산책을 하고 싶을 때는 용기 내 필드를 나간다. 연습장에서 잘만 맞던 공은 밖에만 나오면 제멋대로다. 그래도 필요시 미친 척 나오는 외향형 인간의 두꺼운 얼굴을 무기로, 모르는 사람 세명 그룹에 혼자 조인해서 9홀 라운딩을 다닌다.



엊그제 라운딩에는 평균연령 75세 친정아버지뻘 어르신들과 조인하게 됐다. 스스로를 늙은이라 칭하며 서로 ‘늙은이들이 죽지도 않고 공치고 돌아다니네’ ‘우리는 매일 하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 어느 날 누구 하나 안 나오면 죽은 거야’… 시작부터 저세상 토크에 한참 웃었다.


평일 대낮에 혼자 공치러 나온 젊은 아줌마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에 이어 빼놓을 수 없는 자식자랑과 거침없는 정계 대토론, 세기를 넘나드는 부동산 추세,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의 해외 활약까지. 어쩌다 18홀까지 돌게 되어 같이 껴서 식사도 하고, 명절에 큰아버지 세분 모신 기분이었다.


이 또한 골프의 매력이지 않을 수 없다. 어디서 이런 각계각층의 인생 선배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겠나. 70세는 종심(從心),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 나이란다. 사는 게 힘들다고 징징대는 젊중년에게, 웃어른의 골프 훈수는 더 잘 살아보라는 격려로 다가온다.


’왜 최경주가 그랬잖아, 공이 잘 맞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샷을 걱정하지 말고, 기대를 갖고 즐겁게 공을 쳐야 한다고. 롸이프씨,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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