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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Jan 13. 2019

서울역에서 맛보는 1910년

서울역, 커피사회 & 베리스트리트키친

#지안기행

공짜를 신뢰하지 않는다. 공짜에는 치열함이 담기기 어렵기때문이다. 그러나, 상품을 만드는 것은 그 치열함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받을만큼 받고, 줄만큼 줄 때 비로소 시장은 성장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 동력이다 .


서울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커피사회"라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서울역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도쿄역이 도쿄 스테이션 호텔을 품고, 지역의 역사성과 품위를 모두 갖춘 글로벌 명소가 된 것과는 반대로, 우리의 서울역은  노숙자와 시위가 떠오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쟁쟁한 커피집들이 모여 전시를 한다는 "커피사회"에 내심 큰 기대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향했다 .


공간을 둘러보면서, 문체부가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느꼈다. 입장료가 없는 이 전시는 여러 작가들을 모아 공간을 꾸며 놓고, 커피도 한잔씩 무료로 주었다. 각각의 카페들이 근대의 맛을 재현하는 커피블렌딩도 내놓고있었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시작된 우리 커피 사회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과거와는 많이 다른 스타일의 기획전이었다 .


그런데, 디테일이 많이 아쉬웠다. 공간이 무엇을 말하는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화두는 있었지만 답변은 모호했다. 층고가 높은 공간은 구석 구석이 비어있었다. 공간을 휘감는 강렬한 사운드도 없었고, 그렇다고 은은한 편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커피 전시회였지만, 커피의 향이 강렬하지 않았다. 모든것이 어중간했다.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끼리 만족하고 둘러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공짜로 준다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라고 해도 할말이 없다. 그러나, 이 곳을 도쿄역과 비교했을 때에는 정말 많이 아쉬웠다. 글로벌 경쟁력이 없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멋진 까페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스타벅스는 물론이고 블루보틀보다 더 로스팅을 잘하는 곳들도 많다. 그들이 공간과 하나되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


남편이 이야기했다. 그래도 오랫만에 서울역에 왔으니 맛있게 밥을 먹으러가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서울로 7017 끝자락에 놓여진 베리스트리트키친에 가보기로 했다. 100년이 넘은 석조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음식점. 인스타 감성의 그저 그런 공간이 아닐까 해서 내키지 않았었는데. 그래 오늘은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조금 의외였다. 불편할 것 같은 석조 건물이 매우 편안했다. 노출 콘크리트로 이뤄진 내부의 공간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왔지만, 정돈되었고 트렌디했다. 자칫하면, 어수선해보일수 있는 공간이지만, 소재가 통일되고 연결되면서 안정감을 주었다. 음악도 적당히 공간을 휘감고 있어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다. 친절하고 개성있는 서버들의 모습도 공간과 어울렸다. '직원을 참 잘 뽑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찜하나와 파스타를 하나 시켰다. 김치찜과 파스타라. 도통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은근 괜찮았다. 토마토 소스와 파인애플이 들어간 김치찜은 잘 익은 묵은지와 푹 삶긴 돼지 등뼈가 기본을 잡아주어,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맛을 내었다. 와인 한잔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버섯과 트러플 오일이 듬뿍 들어간 파스타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음식은 '와인'이라는 공통 분모를 찾아 연결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


우리의 전통 건물은 아니지만, 100여년의 세월이 담긴 석조 건물. 열차가 놓이고 다양한 열강들이 들어왔던 시기,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은 이런 석조 건물에 앉아 자기네 나라 음식들을 먹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상상이 들었다. 와인을 부르는 정체 불명의 퓨전 음식점은 공간과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한 공간이었다 .


오퍼레이터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여쭤보았더니, '베리준오'라는 회사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과 현대카드 디자인에 관여했다던 오준석이라는 디자이너의 회사였다. "어떤 종류의 디자인을 하시는 분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직원은 당황해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좀 어려운것 같아요. 워냑 이리저리 튀시고, 아이디어가 많으신 분이라. 저기 보이시는 서울로 7017 BI 제작 등에도 참여하셨어요." 그의 디자인 세계는 넓었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 공간이 아마추어의 취미 공간이 아니라, 프로가 만들어 낸 공간이라는 것. 외국인 친구들을 데리고 와도 좋을 법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의 역사와 흔적이 담긴, 서울역은 잠재력이 많은 동네다. 그리고 분명 그것을 훌륭하게 운영할 오퍼레이터들도 준비되어있는 것 같았다 .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면 사람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베리스트리트키친"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저성장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거기에 최저임금까지 가세하면서, 실물 경제의 동력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일본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그들은 긴 세월의 잃어버린 20년을 탈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그 터널을 지나가야한다. 힘들것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저성장을 탈출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글로벌 경쟁력을 외쳤는지 기억해야한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저성장 터널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우리도 글로벌경쟁력을 마음에 품고 또 품어야한다.


#글로벌경쟁력

#헛돈쓰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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