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비틀어진 헌 계절 사이로 새로운 생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산수유를 닮은 생강나무 꽃과 야생화들, 이름 모를 풀들이 무채색이던 산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사진에 보이는 초록이 모두 머위순.
늦겨울부터 매일같이 우리집 강아지 까미와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머위가 얼마나 돋아났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엔 하루에 하나씩 자그맣고 동그란 머위순이 뿅뿅 돋아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 중에서
<리틀 포레스트> 만화책과 일본판 영화를 보면 머위 꽃봉오리를 넣어 만드는 된장이 나온다. 주인공 이치코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해주는 음식이다.이치코는 친구 키코를 불러 함께 머위 된장을 먹는다. 키코는 머위 된장의 위력이 위험할 정도라며 단숨에 밥을 세 그릇 먹는다. 머위 된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된장국으로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영화에 나오는 머위 된장이 궁금했지만, 몇 년이나 꽃봉오리를 놓쳤다. 머위 꽃봉오리는 이른 봄에 고개를 슬쩍 내밀고는 금세 펴버리기 때문이다. 꽃봉오리 대신 머위 줄기를 넣어 된장을 만들어봤지만, 그것으로는 머위꽃 된장에 대한 호기심을 달랠 수 없었다.
오늘도 머위를 확인하러 갔다. 꽤 많이 돋아난 머위순을 보며 흐뭇해하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봤다.
세상에. 바짝 마른 쑥 덤불 사이로 머위꽃이 피어있었다. 내가 매일 확인하는 곳은 그늘이었지만, 위쪽은 햇빛이 잘 들어 빨리 피었던 모양이다. 동그랗고 큼직한 꽃이었다. 작은 꽃들이 모인 특이한 자태에 잠시 동안 멍하니 머위꽃을 바라봤다.
이미 피어버렸는데 괜찮을까 고민하다가 꽃을 따왔다. 겨우 다섯 송이가 다였지만 그만큼 소중했다. 집 앞에 냉이가 있길래 이것도 욕심부리지 않고 딱 다섯 뿌리만 캐왔다.
집에 돌아와 머위꽃과 냉이를 손질했다. 흐르는 물에 흙을 씻어 내고, 식초물에 담갔다 꺼내 깨끗이 손질했다. 물 묻은 머위꽃이 햇빛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났다.
손질한 머위꽃을 살짝 데쳐 된장을 만들었다. 외할머니의 된장을 넣고, 또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시금장이라 불리는 보리 등겨장을 넣었다. 내가 따 온 봄에 할머니의 장맛이 더해졌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설탕을 넣어 볶으면 끝이다. 냉이는 반죽을 묽게 만들어 냉이의 색감을 살려튀겼다.
완성된 머위 된장은 봄 요리라기에는 탁한 빛이었다. 그와 반대로 냉이 튀김은 싱그러운 색감이 살아있었다. 다른 반찬 없이 머위 된장과 냉이 튀김만 냈는데, 조촐한 상차림인데도 나도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따끈한 밥 위에 머위 된장 올려 크게 한 입 먹었다. 달콤 짭짤한 된장의 맛에 머위의 쌉쌀함이 더해져 정말 맛있었다. 여타 제철 푸성귀처럼 산뜻한 맛도 아니고 고운 빛깔도 아니지만, 분명 봄의 맛이었다. 그것도 아주 깊고 진한 봄맛이었다. 적당한 쌉쌀함이 자꾸만 입맛을 돋웠다.
냉이 튀김도 한 입 먹었다. 바삭, 즐거운 소리가 들리고 싱그러운 봄 향기가 따라왔다. 부족했던 식감까지 채워졌다.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맛의 빈틈이 없었다.
내일도 어김없이 서쪽 숲으로 산책을 가야겠다. 동그란 머위 잎이 돋아난 그늘을 찬찬히 살펴봐야지. 리틀 포레스트를 따라, 우리의 작은 숲으로 봄을 찾아 나설 것이다.
<머위 된장>
1. 머위꽃은 깨끗이 씻고 식초물에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헹군다.
2. 머위꽃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잘게 썬다.
3. 냄비에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머위꽃과 된장, 설탕을 넣는다.
4. 약불에 잘 볶는다. 설탕이 녹고 머위꽃과 된장이 잘 어우러지면 완성
- 따끈한 밥에 올려 먹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된장국으로 먹어요.
- 촉촉한 게 좋으면 물엿을 살짝 추가하세요. - 줄기로 만들 경우엔 섬유질을 벗기고 삶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쫑쫑 썰어 만들면 됩니다.
- 쌈을 싸 먹을 때 쌈장 대신 먹어도 좋아요.
+ 저는 머위를 쓴맛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데 머위 된장은 좋아합니다.쓴맛은 덜하고 향긋하니 꼭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