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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an 14. 2019

일흔의 부모가 문자를 보내는 방법

ㅇㅇㄹㅈ 연락 바랍니다.

나는 부모님과 문자로 얘기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엄마와 아빠는 문자 쓰는 방법을 모르신다. 그러면 지인들은 부모님께 문자 쓰는 법을 알려드리라고 한다.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의 부모가 휴대폰에서 문자를 쓰는 일은 어린아이가 한글을 떼는 일 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아빠는 일흔이 넘었고 엄마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사실 나이보다 한글 자체가 익숙지 않은 것이 더 명확한 이유다.


부모님은 보고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특히나 써야 할 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잘 안 보여 포기하고, 몇 글자를 읽다가 포기하고, 쓰는 건 엄두조차 못낸다. 종이 위에 쓰는 것도 힘든데 화면 안에 쓰는 일은 더 곤혹스럽다. 게다가 뭉툭하고 굳은살이 잔뜩 베긴 아빠의 손가락으로는 글자 하나하나 터치하기가 쉽지가 않다. 스마트폰을 사 드려도 그저 전화를 걸고 받는 것 외에는 잘 쓰질 못하신다. 엄마 아빠에게 전화기는 영원히 아날로그다.      




회사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오후의 시간. 갑자기 문자 하나가 온다.     


‘ㅇㅇㄹㅈ’

엄마다. 몇 초 후 한 개의 문자가 더 온다.


‘ㅏㅐㄷ치ㅁ’     

엄마의 문자. 엄마가 내 생각을 하고 있다. 자음과 모음이 흐트러져 있는 그 문자 속에서 나는 엄마의 마음을 읽는다.     


“딸 일 잘하고 있어? 엄마는 좀 무료해. 오늘도 김치 하나 놓고 혼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저녁에 아빠 고기 좀 맥일라고 삼겹살 사 왔어. 니 아빠 고기라면 사죽을 못쓰잖아. 힘들게 일하는데 좋아하는 고기라도 꾸어줘야지. 우리 딸 바쁘지? 바쁘게 일하고 있는 거 알아서 전화하고 싶은데 그냥 참아. 수고해라.”     


이 긴 말을 문자로 쓰지 못해 그저 휴대폰 속 딸의 이름을 보고 아무거나 눌러보는 엄마. 엄마는 문자가 간 줄도 모르고 그저 애꿎은 화면만 계속 만지작만지작한다.  

   



가끔 아빠에게도 문자가 온다.    

 

‘연락 바랍니다.’

‘연락 바랍니다.’     


뭉툭한 손가락으로 이상하게만 자꾸 저 문구를 반복해 누르는 아빠. 나는 ‘연락 바랍니다’ 여섯 글자를 ‘딸아 보고싶다’로 읽는다. 부모님은 딸의 생각을 잊는 법이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안 올 때, 삶이 무료할 때, 일이 없을 때, 정체모를 문자들을 나에게 보낸다. 휴대폰을 보고 손가락으로 아무거나 눌러보며 딸의 마음을 콕콕 터치한다.     



나는 가끔 엄마 아빠에게 답장을 보낸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 건강하세요’     


온 줄도 모르고 확인도 못하는 그 문자를 나는 부모님께 가끔 보내곤 한다. 그것이 내가 엄마 아빠와 문자를 주고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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