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웃음도 모두 부모님 덕분이었다.
나는 서럽게 우는데 선수다. 그 어떤 배우보다 더 서럽게 울 자신이 있다. 친구들은 내가 울면 ‘왜 우냐’ 가 아니라, ‘왜 이렇게 서럽게 우냐’ 물었다. 모르겠다. 나는 한번 울음이 터지면 그 순간 우는 것이 아니라, 쌓아두고 참아왔던 것들이 터지는 거라 오랫동안 그리고 진짜 꺼이꺼이 서럽게 운다. 나는 삶이 슬픈 게 아니라 서러웠다. 여유가 없는 형편이 서러 웠고, 무지한 부모가 애통했고,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린 내가 서글펐다. 눈치가 빨라 어리광조차 부리지 못하는 아이, 갖고 싶은 것이 생겨도 사 달라 부모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은 아이, ‘해줘’가 아니라 ‘내가 할게’라고 더 많이 말하는 아이. 어린 날의 나는 많이도 서러웠다.
어디에 부딪혀 상처가 나 아파도 갑자기 복받쳐 울고, 티브이나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그 부분이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그걸 핑계 삼아 울었다. 나는 울음에도 꼬투리가 필요했다. 내가 지금 우는 것은 내 삶이 서러워 우는 게 아니다. 이것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상처, 티브이, 영화에 핑계를 붙여 스스로 위안했다. 그래서 한번 울려면 작정하고 울어야 한다.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라던가, 그날은 집에 안 들어간다던가, 새벽 내방 혼자라던가, 그렇게 오래된 친구 앞에서, 술자리에서, 혼자서, 참 서럽게도 울었다.
나는 깨방정 떠는데 선수다. 그 어떤 개그우먼보다 더 잘 떨어볼 수 있다. 그런데 친구들은 내가 깨방정을 떨면 ‘웃기다’가 아니라 ‘왜 저래?’ 웃으면서도 정색했다. 알겠다. 나는 푼수를 떨어야 나 같다. 비록 정색으로 끝날 지라도 상대방이 나를 보고 웃기다고 하면 엄청 뿌듯하다. 나는 원래 잘 웃고, 유쾌한 것이 좋고, 우스갯소리 하는 게 좋다. 나는 삶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야 했다. 매일 피곤에 지쳐 잠이 드는 아빠, 하루하루가 무료한 엄마, 그들에게 나는 생의 낙이 되어야 했다. 집안의 유일한 딸, 당차고 씩씩한 아이, ‘엄마!’ ‘아빠!’ 세상에서 제일 밝은 목소리로 자신들을 불러주는 존재. 나는 그들의 기쁨이 되어 기쁘고 싶었다.
내가 서러운 것은 부모님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명랑 쾌활한 것도 부모님 덕분이었다. 충분히 사랑받으면 결핍이 없어진다 했던가. 나는 나의 결여가 부모의 사랑으로 채워졌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내가 완성됐음을 너무나 잘 알겠다. 나는 많이 사랑받았다. 아버지는 자기 목숨을 걸고 나를 위해 노동했고, 어머니는 자기를 희생해 나를 위해 밥을 지었다. 그 노동과 밥은 가난과 무지를 넘기 위한 부모의 피나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지나온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부모가 아니라 나’ 라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혼자 크고 혼자 이뤘다 느꼈다. 못난 나. 부모는 걸림돌이 아니다. 걸림돌은 내가 주워오는 것이다. 돌멩이는 훠이 훠이 던져버려야지 주머니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다. 무겁고 힘들고, 무엇보다 나를 축 쳐지게 한다.
아빠는 어렸을 적 나를 ‘뽀동이’라 불렀다. 퇴근 후 돌아오면 “우리 뽀동이 줄려고 아스크림 사 왔다!”했다. 나는 그 애칭이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아빤 나를 항상 그렇게 불렀다. 그럼 엄마도 옆에서 아빠를 따라 나를 ‘뽀동이’라 불렀다. “뽀동아! 뽀동아!”부르는 그 말은 넘치는 사랑이었다. 부모의 ‘뽀동 뽀동’한 사랑으로 나는 잘 자라났다.
사랑이 뭐 길래. 사랑은 뭐였다. 부모의 사랑은 모든 것을 다 괜찮게 만들었다. 다 괜찮아지려고 아빠와 엄마는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셨나 보다. 그래서 다 괜찮아졌다.
대학생 때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에게 엄마는 대뜸 “밥 먹었어?”물었다. 안 먹었다고 하자 조금만 기다리라며 뚝딱 김치찌개를 끓여 친구와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었다. “김치 밖에 없는데 그냥 먹어.” 정말 김치밖에 없었다. 배추김치와 갓김치, 깍두기, 김치볶음, 김치를 넣은 찌개까지. 그런데 초딩 입맛 내 친구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친구를 배웅하는 길. 그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사장님이라 엄청 바빠서 맨날 뭐 시켜주거나 가끔 밥 해줄 때 스팸밖에 안 구워 줬거든. 그래서 내가 초딩 입맛이야. 맨날 스팸만 먹어서.”
문득 멋진 정장을 입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학교 앞으로 친구를 데리러 왔었던 친구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친구가 부러워 집에 와 엄마에게 괜히 투정을 부렸었다. 나의 못난 질투가 왜 엄마를 향한 투정으로 바뀌었는지. 친구의 스팸 고백으로 그 질투는 싹 다 없어졌다.
김치밖에 내어주지 못하는 우리 엄마의 반찬과 스팸밖에 구워주지 못하는 친구 엄마의 반찬은 똑같이 맛있는 것이다. 김치가 가난한 반찬이고 스팸이 비싼 반찬이 절대 아니다. 친구가 김치를 질투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듯이, 나도 친구의 스팸 반찬 또한 맛있게 같이 먹어야 한다. 우리 엄마의 김치와 친구 엄마의 스팸을 비교하며 내가 서럽게 울어 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서러운 나의 눈물도 깨방정을 떠는 나의 웃음도 모두 다 부모님 ‘덕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깨방정을 떨고, 대신 서럽게 울지는 않기로 다짐한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왜 나에게 ‘뽀동이’라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삶이 서럽지 않다. 이제 어디에 부딪혀 눈물이 나도 그 상처가 아파 우는 것이고, 티브이나 영화를 보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이 슬퍼 운다. 그것들은 이제 내 핑계가 아니다. 나는 이제 내 삶이 서럽지 않다. 그렇다. 충분히 사랑받으면 결핍은 없어진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란 줄 알았던 지난 내 삶은 알고 보니 부모의 사랑으로 차고 넘치는 나날들이었다.
이제 나는 깨방정을 떨며, 김치도 스팸 반찬도 다 맛있게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