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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Feb 08. 2019

가던 방향을 틀어 일부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아빠의 과자와 엄마의 아이스크림

나는 군것질을 참 좋아한다.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젤리, 달달한 그것들을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어렸을 때도, 학교 다닐 때도, 퇴근하고 집에 갈 때도 슈퍼에 들러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는 그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의 순간이었다. 때때로 밥은 안 먹어도 과자는 꼭 먹어야 했고 밥을 먹은 후에도 과자를 먹어야 했다. 





엄마와 아빠는 이런 나의 군것질 사랑을 잘 알아서 퇴근길에,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한 두 개씩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꼭 사 오셨다. 어린 나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빠보다 아빠 손에 들려있던 검정 비닐봉지를 더 반겼고, 장을 보고 양손 가득 무겁게 짐을 들고 오는 엄마보다 장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과자만 쏙쏙 꺼내 내방으로 들어왔다. 철없던 그때, 과자와 아이스크림에 밀려 엄마와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버터와플, 빼빼로, 롤리폴리를 좋아했는데, 아빠는 빠다코코낫, 샤브레, 건빵을 사 왔다. 나는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는데, 엄마는 아맛나, 메가톤, 비비빅을 사 왔다.     


“아! 이게 뭐야! 맛없는 것만 사 왔어!”     


짜증 내며 봉지를 뜯고 툴툴거리며 잘도 먹었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꼭 이 세 가지 하드를 사온다.

 

나는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올 때면, 집 앞에 있는 세탁소에 들리는 것도 귀찮아 한 달째 맡긴 바지를 못 찾고 있는데, 가끔 들고나간 가방도 무거워 차 안에 그냥 두고 집에 온 적도 있는데, 새벽부터 시작한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오는 아빠는 꼭 슈퍼에 들러 과자를 사 왔고, 양 손에 야채와 과일을 잔뜩 들고 시장에서 부터 손마디가 얼얼할 정도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엄마는 꼭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가던 방향을 틀어, 어딘가에 들러, 일부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아빠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우리 딸 과자 사다 줘야지...’ 엄마는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 ‘우리 딸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곱씹었을 것이다.     




타지에서 혼자 살 때 오랜만에 집에 올라오면 나는 울컥 멈춰서 있을 때가 많았다.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 위에 큰 ‘노래방 새우깡’이 놓여있었고, 냉동실 문을 열면 간 마늘과 생선 사이로 ‘메로나, 빵빠레, 구구콘, 투게더’까지 종류별로 아이스크림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아빠는 과자를 좋아하는 딸내미가 오랜만에 집에 온다고 하니, 슈퍼에 가서 그냥 새우깡의 크기로는 성이 안차 과자 중에 제일 커 보이는 노래방 새우깡을 집어 오셨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내미가 집에 온다고 하니, 슈퍼에 가서 하드가 아닌 최대한 부드러워 보이고 비싸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집어 오셨다. 엄마와 아빠는 또다시 방향을 틀어, 슈퍼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우리 딸 이번 주말에 집에 오지...’ 월요일부터 되새겼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군것질을 좋아한다지만 겨우 주말 이틀 있다 내려갈 건데, 크기와 양은 두 달 동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결국 새우깡 한주먹과 메로나 하나를 겨우 먹고 다시 내려갈 채비를 한다. 커버린 딸의 입맛은 변했고, 늙어버린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오면 다 먹지 못한 노래방 새우깡과 아이스크림이 계속 생각이 났다. 부모의 사랑은 너무 과분해 못난 딸내미는 그걸 다 먹어내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나 대신 남겨진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딸 생각을 씹어 삼키실 것이다.


한동안 나는 그 어떤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울컥 목구멍이 차올라 잘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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