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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Nov 16. 2021

'하기 싫어병'을 벗어나고 싶어서...

인생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요...


'나 숫자에 약한데...'

'아, 난 살림 진짜 못해. 몰라 몰라!'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하던 말들이다. 어찌나 못하는 것들 투성이인지, 시작도 하기 전에. 말을 꺼내자마자, '거절'부터 해온 것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계부 정리'인데, 기초적인 덧셈과 뺄셈은 계산기가 다 해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사래를 쳐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한 달 결산 때마다 '왜 이렇게 함부로 썼을까?'라는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방금 긁은 카드를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 못 하는 내가, 어찌 살림을 책임질까 싶어서 몇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현실 도피.


나의 학창 시절에도, '하기 싫은 병'은 '현실을 도망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겪었는데, '하기 싫은 것'들을 할 때면 습관적으로 복통과 두통이 찾아왔다. 그 통증의 원인이 '마음' 때문인지, 실제로 '후유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딱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할 때 정확하게 아파졌다. 꾀병이라고 하기에는, 응급실에 갈 정도로 무척이나 아팠었다.


Michelle Lema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특히 남의 돈을 벌어먹는 직장에서, 그 병은 더욱 쉽게 도졌었는데... 악마(?) 같은 편집장 아래에서 1년을 이 악물고 버티다가 일주일이나 입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뭐, 그 일을 핑계 삼아 자의반, 타의 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로 새로운 직장을 옮겨서도 '하기 싫은 병'은 때때로 내 몸을 병원으로 이끌었고, 정도의 차이였지 만성통증으로 물들어갔다. 아이를 낳고 나서, 육아를 하기 싫을 때면 여지없이 '나를 도발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까 내 마음대로 아플 수가 없는 거다. 친정 근처를 떠나 우리 넷만 살고 있으니까, 내가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이 없었다. 배가 뒤틀려서 응급실을 가고 싶어도, 밤에 자고 있는 아이 둘을 깨울 수 없으니 이를 악물고 참았다가 아침에 병원 문을 열자마자 가보기도 했고. 순간의 고비들을 넘겨가며, 나는 아픈 엄마로 살아갔다. 어느 날은, 배를 움켜쥐고 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다가와 배를 슥슥, 문질러 주었다. 꼬물거리는 그 작은 손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마는, '너희들 땜에 뒤집어진 속이란 걸 아는구나!' 싶어 헛웃음도 나왔다.


'난 멘탈이 너무 약해서, 애도 잘 못 보고... 남편을 힘들게 하네.'라는 생각이 자주 든 탓일까. 몸도 마음도, 의지도 약한 내가 너무 싫어서 점차 자존감도 낮아졌고, 자신을 싫어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하기 싫은 게 있으면 기어코 빌빌거리고야 마는, 이 약해 빠진 몸뚱어리 같으니라고!


그렇게 '누워있기'를 좋아하던 내가, 요즘에는 내 글을 쓴답시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녔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긍정적인 대화도 나누고, 책을 쓰겠다는 꿈도 꾸게 되었으니까. 매일이 신났다. 그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벗어나서,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걸 알았다고. 그동안 방구석에서 남의 글만 주야장천 쓰면서 머리가 하얗게 새는 줄 알았는데, 나 글감 찾았쒔! 마흔이 그렇게 신비로운 나이라며 오두방정도 떨어봤었다.


'야, 너도 마흔 될 수 있어~' 이라믄서 말이지.


뽕 맞은 것처럼 들떠 있던, 그 리듬을 타고 지난주에는 '투고'라는 걸 해봤다. 기획서 쓰는 연습이다 생각하고, 마치 피아노 연주를 하듯 거침없이 키보드 치며 신이 났다. '그래, 뭐 책이 별거더냐?!'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글들을 여기저기 뿌리면서 혼자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안될 거를 알면서도, 기분을 내보고 싶었던 거라고... 잘 될 수가 없는 건데 '연습한 거라고...' 일주일 동안 아이들이 감기 때문에 학교도, 유치원도 가지 않아서 '광기'에 살짝 돌아서 그랬던 거라고............(또르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니...)


그러다, 오늘 밤에는 울음이 폭발했다. 13년을 써왔는데, 난 뭘 더 진심으로 써야 하냐고. 남의 글을 쓰면서도, 난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난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다고.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었던 내 간절함이, 무언가로부터 떨어져 나와 꼬르르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오랫동안 '하기 싫어 병' 때문에 삶이 괴로웠는데, '작가가 하고 싶어서 죽겠는 병'이 생겨날 줄이야.


왜, 몸이 멀쩡하지?! 인체의 신비인가. 이만큼의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라면, 벌써 나는 응급실에 누워있어야 할 판인데... 늘 아프던 곳들이 멀쩡하다. 그저, 울고 난 이후 내 눈덩이만 부어있을 뿐. 가만, 떠올려봤다. 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했던 적이 있었는가? 너무나 애가 타서 딱! 타죽겠을 만큼 괴로웠던 때가 있었나? (아... 출산할 때가 있었지. X싸듯이 하라는데, 죽을 X을 싸도 안 나올 것 같은 느낌.... 에잇!)


최근 깨달은 바, 내 몸을 어찌 다뤄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 싫다'라고 느끼는 순간, 아주 요망(妖妄) 하게 나를 괴롭히더니.

무언가를 '요망(要望)'할 때에는, 아주 고요하게 나를 지켜주나 보다. 잘 해내라고.


지금까지 이 몸으로 40년을 살았는데, 이제야 알아채다니. '하기 싫어 병'은 어쩌면 실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핑계였을지도. 생각을 전환해서, '간절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오랫동안 내가 스스로 한계를 두고 '절대'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것들을, 올해 얼마 남지 않은 두 달 동안 해보려고 한다. 바로, 등산하기.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매표소'에서부터 두통이 올라왔던 날들이 숱하게 많았는데, 그걸 한번 뒤집어 보고 싶다. 이걸 해내고 나면, 또 하나씩 도전하는 삶을 이어가야지.


아, 오늘도 글을 쓰면서, 내가 나를 참 잘 키우고 있다는 걸 느낀다.

손이 많이 간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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