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서가 Apr 02. 2021

커피가 식기 전에,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시간, 그 어딘가에서.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한 후로, 커피는 나에게 매우 소중한 벗이 되었다. 매일 아침 나를 반겨주는 책상도 없고, 일의 고충을 나눌 동료도 없는 프리랜서의 삶. '내가 나를 먹여살려야 하는' 외로운 삶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집에서 돈을 버니까 얼마나 좋아!'라고 말을 건네지만, 그런 이유로 통장 잔고에 여백이 가득하다.


노트북 하나 들고 앉아서 글을 쓰는 곳이, 바로'일터'. 공간을 빌려쓰는 만큼 '커피 한 잔 값'은 꼭 지불해야 한다. 한때는 4,500원짜리 커피를 시켜놓고, 2시간에 12,000원짜리 원고를 쓰는 글자 노동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어떻게든 '글'을 다루는 일을 이어가고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아쉬운대로 닥치는대로 글값을 주워담았다.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이 '글'이기 때문이었을까? 보수가 참으로 박하다 못해 치사할 때도 있었다. 참깨에서 기름 짜내듯이 적은 돈을 주고도, 이래저래 말들이 많았으니까.

다행히 몇 년 고생한 끝에, 지금은 인심이 넉넉한 분들과 함께 일을 이어가고 있지만. 매월 같은 내용의 글을 다르게 쓰는 것은 참 쉽지가 않다.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진 수많은 단어들을 엮고 엮어야만 클라이언트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 이 원고를 뽀개버리겠노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집중하다보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럴 땐, '정신 똑바로 차렷!'하고 부장님 호통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킨다. 화들짝, 하고 정신을 깨어야만 나머지를 이어갈 수 있으니까. 가끔을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뭐라고 써야 할까?!' 시간에 쫓겨 발을 동동 거릴 때면,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또 한 모금 쪼옥! 하고 들이킨다. '이 맛이지!'


오늘도 '커피값은 해야지!'하고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을 또 노려보고 노려본다. 노트북이 나한테 뭘 던져주는 것도 아닌데. 가끔은 siri야~ 하고 문명의 이기에 기대보고도 싶지만, 결국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다. 누가 그랬나,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 '기자나 작가'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오히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글을 걸러내는 기계가 더 많이 발전될 것이고, 사람들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지는 않을까. 더 새로운 것을 향해서. 이것도 AI가 해주려나. 또르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 펄 시스터즈의 노래 '커피 한잔' 중에서...


때로는 커피 몇 모금을 연거푸, 이러다 어지럽겠다 싶을 정도로 마셨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맛있는 저녁을 양껏 차리려고 마트에 갔을 때, 주차장이 꽉꽉 차버려서 꾸역꾸역 지하 5층까지 내려갔는데도 자리가 없는 기분이랄까. 다시 돌아나오자니, 내려온 게 아깝고 배는 고파서 뭐라도 사먹고 싶은데 나는 차 안에 갇혀있는 느낌. '목 탄다, 커피 한잔만......'


그러다 번뜩!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지면 '그분이 오셨구나!'하고 신이 난다. 하늘에서 글비가 쏟아지듯 마구 마구 써내가고, 마지막으로 엔터 끝! 오늘도 잘 해써! 스리슬쩍 첫문장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훑고나면 미련없이 원고 전송~ 노트북을 착!하고 덮는 것으로 글쓰기를 마무리한다. 이 맛에 글을 쓰지!


이렇게 산 지, 4년은 된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한 글자 노동에 마음도 주고, 시간도 내어주고...... 경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급여가 넉넉한 것도 아니지만 '뭐라도 한다'는 위안을 얻고 살아왔다.


어느 날은 '난 내 것은 못 쓰는건가?'라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는데. 차라리 뭘 쓰라고 하면 머리 쥐어 뜯어가면서 끝내 써내고야 말지만, 내 이야기는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웃기게 쓰자니 가벼워질 것 같고, 진지하게 쓰자니 이 따위 지리멸렬한 글을 누가 읽을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언저리에서 쓴 글들이 임시 저장글로만 쌓였다.


'돈 글'과 '내 글'을 분리하면서, 괴리감은 더 커졌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책 한권도 못 내본 나를 '작가'라고 명명하기도 애매하고, 난 무얼 하는 사람일까? 싶어서 닥치는 대로 뭐든 배웠다. 어떤 날은 그냥 멍이나 때리자 싶어서 카페에 앉아, 커피값을 낭비하기도 하고.... 뭐 때문에 애쓰고 사는 걸까? 허덕일 때쯤.


엄마가 툭! 하고 건네신 한 마디. "우리 영주는 아주 열정여사야!"

아,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만 마셨던 건. 내 안에 열정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까. 자존감이 낮았던 것도,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것도 모두 '열정' 때문이었나보다. 삶에 대한 열정, 배움에 대한 열정, 가르침에 대한 열정... 열정 덩어리!


나를 욕심꾸러기, 작심삼일의 아이콘이라고 단정 지었던 순간들이 와르르 무너졌고. '열정!'이라는 두 글자만 팍!하고 새겨졌다. 내 삶에 열정들이 어디를 향했었는지, 글을 쓰면서 톺아보려고 한다. 그럼 내가 나를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돈벌이 같은 글에도 내 열정값이 숨겨져 있다는 걸. 그럼 일을 대하는 태도도 더욱 편해질 것 같다. 그리고, 자그마한 내 몸에 가득한 열정 세포들을 이제 글로 하나하나 깨워볼 차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 대한 착각_"고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