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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Nov 12. 2021

나에 대한 착각_"고상하다"


"언니는 B급 감성이야. 자신을 속이려고 하지 마.

아, 이 언니. 우아하겠다는 욕심 버리고, 언니 모습대로 살자!"


그녀는 종종 나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긴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한쪽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난 이렇게 대꾸했다. (어디서 본 건 있었다)


"나 글 쓰는 언니야. 내가 좀 위트가 있긴 해. 재치도 있지. 그렇지만 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어. 나의 고상한 부분을 좀 더 살펴주겠니? 이제 마흔이야. 나 격조 있게 살고 싶다. 진짜~"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 언니, 자신을 잘 모르네. 언니 고상한 걸로는 안 먹힌다니까. 그냥,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내가 왜 글 쓰는 게 괴로울까 한번 생각을 해보라고."


콧구멍에 힘을 바짝 싣고, 또 주문했지만. 난 끄덕일 수 없었다. 'B급이라니.'

이렇게 나에게 쓴 주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녀는, 나의 마지막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 살 아래 동료였다.


아마도 12년 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새로 생긴 온라인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팀장님과 고작 셋이서 분주하게 일하던 때였다. 저녁 8시 무렵이면 난방이 꺼지는, 공공기관에 일하고 있었기에 야근할 때면 추위가 가장 두려웠었다. 라테는 말이야, 보일러도 안 들어오고 그랬어! 쩝.


그 당시 팀장님은 우리와 거의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났었기에,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어깨도 못 펴고 일하던 기억이 난다. 그녀와 나는 꽤나 순진했고, 말을 참 잘 듣는 부하직원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아옹다옹 사소한 걸로 의견이 대립하기도 했는데, 팀장님의 한 마디에 깨갱~하고 3초 만에 바로 복종하는 새가슴들이었다. 그렇게 새벽이슬 맞아가며 눈곱도 못 떼고 출근했다가 집에는 잠시 잠만 자러 들어가던 '마감'의 행진이었다.


2주마다 매거진이 발행되니까, 그 사이 출장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웬만한 정부 행사는 다 다녔던 것 같고, 작은 기업부터 대기업까지 발 도장을 찍으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사무실에 돌아오면, 눈알 빠지게 기사를 읽고, 편집하고..... MSG를 좀 치자면, 그렇다고오.


3년쯤 되었을 때 갑자기 그녀는 '이렇게 살 수 없다!'라며 이직을 결심하고, 회사를 떠났다. 국내도 아니고, 중국으로 휘리릭 며칠 만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버렸으니 붙잡을 방도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다음 해에 나 혼자 마감 중에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보러 갔을까. 지도 한 장 없이, 주소만 하나 달랑 들고 갔던 그 무모함이 가끔 그립다.


여자들의 짠 내 나는 우정이란, 못 만나니 더 그리운 법이랄까. 그녀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충청도로 이사를 가버렸다. 우리에게는 '카톡'과 '전화'가 있었고, 종종 한 시간이 넘게 통화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육아에 허덕이면서 '일'을 다시 하고 싶었고, 그녀는 '결혼'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느낌은 고민 상담이었지만,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낄낄거리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런 관계, 있지 않은가? 대중목욕탕에 서스름 없이 같이 가고, 등도 밀어주고 바나나 우유 마시면서 내가 뭔 말하는지도 모르고 떠드는 사이. 그녀와 나는 말로 때로 밀어주고 샴푸질도 해주면서 각자 마음에 묵혀두었던 썩은 것들을 씻어냈다. 그런 대화가 '고상할' 리 없었고, 완벽한 날것이었다. 너무나 힘든 시기를 함께 했기에, 포장 같은 거 의미 없는. 대화의 빈 공간을 굳이 채우려 애쓸 필요 없는 그런 사이였으니까.


최근에는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녀에게 조언이라도 구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주제를 언급했지만, 반응이 너무 없었다. '와, 이건 아니라는 걸' 분위기로 감싸버리는 무정함이란. 나의 간질거리는 말재간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나의 공기 반, 소리 반 음성'은 거리감이 꽤 느껴졌던 것 같다. 책 에세이를 들려주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건네준 건... 몇 개의 유튜브 채널이었다. 하나, 하나 열어보면서 내가 뜨악~했는데, 그 리스트들은 다음과 같다. <박막례 할머니> <권감각> <우니의끼니>... 어떻게 다들.... 나와 하나도 맞지 않는데!


책을 읽어주고, 차분하고 조용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은 그녀의 머릿속에 없었다. 나 작가 될 거니까, 좀 지적이고 그런 분위기 하고 싶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눈빛만으로 '언니 마음 다 이해해. 그런데 옳지 않아. 언니의 길은 그것이 아니야~'라는 진심을 전하고 있었으니까. 정말, 나는 B급 감성이 맞는 걸까?!



내가 굳이 지금, 오랫동안 글을 쉬다가 이렇게 긴 호흡으로 그녀와의 추억을 꺼내놓는 건.

'어떤 글을 써야 내가 행복할까?'라는 물음에 한동안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의 주제와 콘셉트까지 다 정했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었는데... 길을 잘못 든 것처럼 써지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어제는 내 눈알이 뒤로 넘어갔던 건지, 무턱대고 책이 내고 싶은 욕망에 정리되지 않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래 놓고, '나 투고했다'라고... 뭘 했다고 남편과 소주에 치킨을 그렇게 정열적을 뜯었던가. 살짝 취기가 돌았는데도, 자려고 누우니 이불킥!이었다. 그걸 왜 보냈을까. 또르르.....


그리고,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난 그냥, 글 잘 쓰는 또라이다'. '왜 글과 내가 분리되어야 하는가?'

'내 안에 숨어있던 똘끼를 시원~하게 드러내 봐야겠다.'

'젠체하고 싶으면 하고, 있지도 않은 겸손 끌고 와서 끙끙대지 말자.'


이 장황한 글의 결론이, 고작 '또라이'임을 커밍아웃하는 것이라도 나는 즐겁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나의 가면보다 쌩얼이 예쁠지 누가 알아....요?


"미안해요. 딴 사람 같지만, 원래 이게 저였나 봐요. 쓰다 보니 속이 시원해져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팟캐스트라는 숙제가 있지만, 어쩌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죠.

내 모습이 어찌 하나만 있겠습니다. 맛깔나게 글 잘 쓰는 또라이도, 별빛서가도 모두 나인 걸요."


고상하거나 웃기거나 뭐가 대수랍니까?

그때그때 느껴지는 분위기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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