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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Mar 01. 2023

경력보유자로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2022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다지 내 인생이 고요하게 흘러간 적은 없었지만, 지난해만큼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을까 싶다. 마치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처럼, 팔다리를 번갈아 휘젓기도 했고. 물장구만 치면서 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팔다리의 균형, 들숨과 날숨의 조화를 이루면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 건지도.


2022년은 시작부터 우울했다.

나름 책을 써보겠다고 지난 연말부터 부지런을 떨었는데, 몇 군데 투고하고 물만 먹었다.

"보내주신 원고는 꼼꼼히 검토해 보았으나, 출판사의 출간 의도와 맞지 않아...." 등등 이런 메일만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이었다.

더 깊숙하게,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난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왜 쓰지 못할까는 곧,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니까. 그렇게 봄을 맞이했다.


아이들과 나름 현장 학습도 갔다


무언가 시작하고 싶었다. 뭐라도.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쓰임'이 있기를 바랐다. 방학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 아이와 친한 친구들 셋을 모아서, '글방_별빛서가' 문을 열었다. 사업자등록과 교육청에 신고를 마쳤고, '글쓰기 선생님'으로 살아봐야겠다 생각했다. 거실도 공부방처럼 꾸며놓고, 화이트보드도 벽에 걸어두었다. 일주일에 한번,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무척이나 보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들 셋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내가 손수 만든 교안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이 뿌듯했다. 이렇게 단순한 인간이다, 내가.


다시, 사회로 통하는 터널로 진입했다.

오래전 함께 일했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두 달 정도 글 쓰는 일을 해보겠냐고. 보수도 없는 봉사활동 같은 일이었지만, 내가 10년간 단절되었던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들을 직접 키우겠다고 경력 단절을 선택했는데, 그 순간을 때로 후회하고 때로 잘했다고 토닥이며 버틴 10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여보, 당신이 다시 사회생활하는 게 소원이었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해. 나와 아이들은 괜찮아."


남편의 한 마디에, 그래 결심했어!


그리고, 한순간이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더마는...

그날의 선택 이후, 불나방처럼 일을 배웠다. 10년 전에는 어지간히 일을 독하게 배웠어야지... 내 몸에 있던 모든 업무 세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소위 경력 단절기라고 불렸던 프리랜서 경력도 비빔밥의 고명처럼 어우러져서, 손가락이 날아다니듯 타자와 춤을 췄다. 책을 쓰겠다고 발악했던 일, 독서모임으로 여러 사람들과 오만 가지 대화를 나눴던 일, 새벽 기상한다고 해가 뜨기도 전부터 하루를 시작했던 그 모든 경험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왜, 이제서야... 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라는 기분이었다. 두 달여간의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난 다시 기지개를 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경력 보유자로서, 사회 속으로 안착하는 중

경력단절녀라고 스스로를 불렀었다. 난 끊어져 버린 다리 위에서, 엉엉 울고만 있는 아이라고. 누구의 도움 없이는 그 다리를 건너지도 못할 거라고. 10년간 수백 건의 이력서를 써오면서 '난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자주 포기했다. 때로는 내가 다시 일하지 못하는 이유를 '육아'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거리가 멀어서, 야근이 많을 것 같아서, 급여가 적어서, 9 to 6는 안될 것 같은데... 이유를 다 던져버리고, 마음과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다. '일을 하자'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많은 고민과 과정 끝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나를 믿자!

'이거 해서 뭐 하려고, 의미 없는 일이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 될지, '의미가 있을지'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 언제 그 경험들이 쓰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지나온 노력과 순간들에 용기를 넣어보면, 때로 답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가장 걱정이었던 육아는 돌봄 선생님에게 부탁드리고 있다. 아이들이 이제 제법 크기도 했고, 내가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엄마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마흔이 넘어서 다시 시작한 직장 생활. 


나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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