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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Jan 03. 2023

멋쩍은 중고나라 거래 후기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痴)'로 불렸다. 하지만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이덕무도 가족들의 굶주림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아끼던 책 <맹자> 한 질을 팔아 양식을 구했다는데 그때의 자괴감이 오죽했으랴. 그 이야기를 들은 연하의 벗 유득공 또한 책장에서 <좌씨춘추>를 꺼내 아이를 불러 술로 바꿔 오게 해 함께 마신 모양이다. 이덕무는 말했다. "맹자가 몸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씨가 술을 따라 권하는 것과 같구나!"


학원 선생을 하던 마지막 해에 구입해 아껴 사용하던 아이패드를 중고나라에 올렸다. 애틋함이 없지 않았지만 22년엔 몇 번 켜지도 않은 터라 이제 더는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호기로운 가격에 올렸지만 도무지 입질이 없어 야금야금 가격을 내리다 보니 그래도 좋은 임자를 만나, 오늘 사당역에서 직거래를 했다. 동영상도 거의 본 적 없이, PDF 위에 글씨를 써서 시험 자료 만드는 데만 사용했던 터라 상태는 괜찮을 것이었다. 계좌 이체로 얼마간의 돈을 받고 돌아오는 길, 아내랑 족발에 소주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철을 탔다. "팀 쿡이 몸소 족발을 쪄 주고, 스티브 잡스가 술을 권하는"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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