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마법사(마술사 아님, 이유 : 마법사가 더 센 것 같아서)"라고 진지하게 답하던 초1 딸내미는, 며칠 전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쓰라고 하니 "평소대로 살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되는 것 같기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한 답을 적어 왔다. 원래 어릴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창한 꿈을 꾸기도 하고, 어제 꿈과 오늘 꿈이 다르기도 한 것 아닌가. 어려서 가진 꿈을 향해 끝까지 직진하여 인생을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현실적으로 정말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건 고등학교 때인 것 같다. 입시 때문이다. 요즘은 그냥 수능만 잘 보면 대학에 가는 세상이 아니어서, "내 꿈을 위해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 아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얼핏 보면 수능이라는 오지선다로 줄을 세우는 것보다 합리적인 것 같지만, 고등학생들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꿈을 위한 고민과 준비"를 수치화하는 과정의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그 '꿈'이 뭔지,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아이들을 참 많이 보았다.
"저는 꿈이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시무룩해 하는 아이들. 그런데 내가 정말 안타까운 건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열일곱 나이에 품었던 꿈을 위해 그와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고, 관련된 공부는 조금 더 잘해야 하고, 꿈과 관계 있는 책도 좀 읽어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게 정말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열일곱에 꿈이 없다고 죄가 아닌데, 적어도 입시에선 벌을 받는 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 된다. 가령 고3 때 꿈이 생긴 아이는 입시에서 이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아이들이 적당히 짜맞춰 원서를 쓰고, 마치 그 꿈을 향해 살아온 것처럼 서류를 만든다.
일찍 꿈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10대의 나이에 입시로 꿈이 강요되는 것은 문제다. 아직은 어린 나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가능성들을 접한 후, 꿈을 갖고 그 꿈을 키워도 늦지 않는다. 꿈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어려서부터 뭔가를 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꿈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닐 뿐 아니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스펙트럼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당장 우리가 입시 제도를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아직은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지금 꿈이 없는 건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