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선택에서 다수에 포함된 표준인간이 되라고 가르쳤어요.
(1)
나는 재무팀(혹은 회계팀)에서 일한 지 10년을 채우고 나서야 내 성향과 직무가 어긋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눈치챘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란 생각으로 애써 덮어왔던 것 같다.
대신 결단력과 속도가 빨라 10년간 한 번도 마감기한을 넘긴 적이 없다. 하지만 첫 결과물이 완벽했던 적도 없다. 돈을 다루는 직무에서 이 점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다행히 3년 차쯤부터는 내가 뭘 틀릴지 조금씩 예측이 됐지만 그렇다고 안 틀린 것이 아니라 덜 틀린 것이고 이직할 때마다 비슷한 반복을 겪었다. 치명적 실수가 아닌 하찮은 실수라는 것이 더 열받는 일이었다.
대신 찾은 강점은 '직관력'이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직관력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 자잘한 실수를 덮고도 남을 만큼 큰 이익을 가져다준 적이 많았다. 그걸 인정받으니 승진속도는 고속도로를 탔다. 대신 직관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는 회사에서 나는 좋게 쳐줘야 유틸리티 플레이어, 아니면 시즌 아웃된 선수의 대체자 정도로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회사를 가야 할지 명확해졌다.
(2)
나는 운동을 배워본 적이 없다. 태권도 대신 피아노학원에 갔고 바이올린을 배웠었다.
체육시간에 계단에 앉아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방과 후에 운동을 하려고 남은 적도 없다.
어느 날부터 밥만 먹으면 잠이 쏟아지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지경의 무기력증에 시달리다가 졸지 않기 위해 산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억지로 밖을 나가다 보니 오랜 기간 달고 살던 편두통이 사라져 갔다.
건강검진에 근력은 항상 부족했고 체지방은 항상 넘쳐났다. 근거도 없이 '역시 난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해본 적도 없는데 이제 와서 무슨'이란 생각만 했었던 내게 무료로 임시개방한 아파트 헬스장은 운명적이었다. 딱 3번을 가고 난 뒤부터 나는 더 이상 무기력하게 소파에 누워있지 않게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나를 알 생각이 없었다.
비겁하게 나를 몰랐다고 하기엔 몸과 정신이 보낸 시그널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뭔가 '표준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다.
그 표준인간을 정의할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표준인간'에서 벗어날 땐 나를 비정상으로 취급했고 비정상임에도 '표준인간'과 비슷하면 환호했다.
남들 다 갖는 물건을 사지 못한 게 너무 화가 나는데 정작 장바구니엔 흔하지 않은 것만 담는 게 나였다.
나는 남보다 심하게 나를 더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