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내와 실수에 신경을 꺼야하는 이유
(1)
내 인생에 보상이란 인내 뒤에는 후했지만 성취 뒤에는 초라했다.
정확히는 인내 뒤에는 혼나지 않는 것이 보상이었고 성취는 당연한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 성취가 없는 과정은 동기를 부여하기 어렵고 괴로웠습니다. 인내는 그에 비하면 보장되고 예상되는 결과를 가져다주니 안정감을 줬다. 보이지 않는 더 큰 것을 얻는 성취에 도전하기보다 보장된 것을 얻는 인내에만 안주하고, 이것이 더 큰 가치라고 스스로 세뇌되어 버렸다.
(2)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 친척들이 모이면 참 재밌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뛰고 웃었다, 그때는.
그 시절 늘 듣던 소리는 뛰지 마, 조용히 해, 히히덕 대지 마 이런 얘기였다.
근데 초등학생이 안 뛰고 조용히 웃지도 않으면 뭐 하나?
정부 경제정책을 논하나, 아니면 집안일에 빠지려는 시누이 욕을 할까, 아니면 시험공부를 할까?
혼내던 어른 나이가 되고 나니 참 그분이 밉고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모두가 모든 것이 불편투성이가 되었다.
매일 온라인에서는 불편배틀로 입장이 다른 서로가 서로한테 인내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뉴스에선 매일 싸우는 정당, 노사갈등을 다루고 새로 나온 신상갑질과 갈등도 쏟아진다.
부부갈등, 부모갈등, 세대갈등 온통 네가 맞네 내가 맞네로만 미디어가 도배가 돼버렸다.
그런데 그중에 내가 직접 피해를 입은 게 얼마나 될까?
인내와 실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스트레스에서 많이 해방되었다.
나에게 피해도 없는 누군가의 실수에 그만 분노하게 되었다.
오늘도 수십만 명이 실수했겠지만 내 하루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