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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Apr 01. 2020

캐리어 자주 끌게 된 사연

공연하며 해외로

“지금 어디 계세요?"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에 이어 많이 듣는 질문이 바로 "지금 혹시 해외에 계신가요?"다.


따지고 보면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도 사무실 밖으로 나갈 일이 많았다. 취재나 인터뷰 때문에 서울과 지방의 여러 곳을 오가야했다. 그러나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부터 비로소 해외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처음 입사한 극단이 해외로 많이 나간 덕분이었다. 그 극단은 해외에서 공연을 선보이면서 몇 군데에서 초청 문의를 받았고, 당시에는 영국인 매니저가 커뮤니케이션과 투어매니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내가 해외에 갈 일은 당분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일한 포지션의 사람을 둘씩이나 부를 필요는 없다. 해외에서 외국팀을 초청할 때,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인원수다. 항공료, 숙박비, 식대, 현지 교통비까지 고려한다면 당연한 논리다. 사람 수는 바로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 유럽 투어를 가게 되었다. 원래 가기로 했던 영국인 매니저가 갑자기 갈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아일랜드-프랑스'를 한 달 간 도는 일정이었는데 그 투어가 내게는 첫 비행이자, 해외 방문 경험이었다.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압박감이 엄청났다. 나 홀로 가는 여행이라면 그토록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연은 행여 내가 잘못해서 무언가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투어 멤버는 물론이고, 현지의 관계자와 관객들까지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에 마치 내가 도미노 게임의 말이 된 기분이었다.      


해외 투어 같은 경우에는 국내 공연에 비해 준비기간이 더 길다. 거의 2년 전부터 일정을 논의하고, 이후로 공연료와 세부 조건들을 조율해나간다. 당시만 해도 메신저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메일로 이루어졌는데 워낙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만나기 전부터 현지 담당자들이 친한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투어 전에도 준비해야할 것이 많은데 공연에 필요한 소품부터 의상, 그리고 간단한 생필품과 식료품까지 살뜰하게 챙겨야 한다. 또 투어에 참여하는 배우들 여권과 이티켓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잘 챙겨야하고 말이다.


런던 출장 시 관람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

      

현장에 가서는 '공연을 많이 보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과는 다른 문화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마주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지만, 첫 경험은 언제나 서툴게 마련이듯 한 달 간의 유럽 투어는 정말로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낯선 환경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최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페스티벌이나 극장 관계자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세부적인 부분을 다 챙겨야 했는데, 경험이 많지 않았던 탓에 협의하는 것이 극도로 서툴렀다. 또 갑작스럽게 생긴 변수에 대처하는 것도 미흡했다. 아직도 아일랜드에서 프랑스로 이동할 때, 공항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던 차량 기사가 연락되지 않아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현지 아일랜드의 한국대사관 측이 차량을 보내줘서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한국 공연팀의 투어 매니저로 일하거나, 페스티벌에서 일하면서 해외를 갈 기회가 많았다. 일로 다니다보니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거나, 개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통해 해외에 많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국내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바깥세상을 두드리며,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외국의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와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거나, 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장점 중 하나다. 비록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짧은 만남을 통해 맺어진 귀한 인연임에 틀림 없다.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면서도 관객들에게 '보다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찬란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는 때로 무기력해지고, 나태해지는 내게 좋은 자극이 되어준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기약없이 미뤄진 지금에도 우리는 현지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프랑스 아티스트와 전시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었으나, 그것의 향방조차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무언가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멋진 프로젝트를 꺼내놓을 수 있도록 공부하고 연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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