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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Jan 15. 2024

02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시네요?



 "짜장, 짬뽕 둘 중에 뭐가 더 좋아?"

 "나 짜장!"

 "어? 나랑 같네?"


 단순하게 두 메뉴 중 어떤 메뉴를 더 선호하는지, 그 생각이 나와 같은지를 확인했을 때의 기쁨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같은 생각'의 하위버전에 가깝다. 어떤 메뉴를 선택해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단지 선호도에 대한 질문을 넘어 각자의 가치가 심어진 이야기의 동일성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은 정말 황홀 그 자체였다.


 "저는 책을 무조건 제 값 주고 사요. 글을 쓰는 노력의 무게를 알아서인지 그게 일면식 없는 작가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사 표현이랄까? 그리고 무조건 처음 읽는 날을 맨 앞장에 써둬요. 간단한 그날의 메시지와 함께요."


 대부분 나의 말에 의아해하며 꽤 독특하다는 표정을 비추곤 한다. 그 묘한 표정들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별거 아닌 나의 습관을 까발리는 듯한 기분이 변태같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 저랑 같네요?'라는 답을 못내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다들 신기하다는 반응뿐이었다. 세상이 좋아져 굳이 손으로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더욱 손으로 삭- 삭 하며 넘기는 순간이 소중해졌다. 또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고 전자책으로 일정 시간 대여 하여 편히 읽을 수 있는 시대다. 환경을 생각하면 이로운 선택일지 몰라도 유난히 어린 시절부터 지켜온 쓸데없는(?) 고집 중 하나이다. 밑출 쳐 가며 나의 생각을 남기는 의미가 유독 너무 좋기에.


 베스트셀러로 그룹 지어 줄 세워있는 책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한 때는 무조건 베스트셀러 섹션을 다 섭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나와 조금 다른 생각이나 가치 앞에서도 베스트셀러, 즉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긍정했기에 나도 마치 그들의 생각처럼 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꼭 읽고싶은 유명한 책, 누군가 권하는 유명한 책이 아니고서야 굳이 시간을 할애하여 읽지 않게 되었다. 되려 에세이 섹션으로 가 처음 보는 작가의 책들을 건조하게 펼쳐보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한 문장이라도 있다면 그날의 구매 목록에 포함되었다. 내가 책을 사고 글을 읽는 이유는 훌륭한 정보를 얻는 목적보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서 얻는 소소한 목소리가 즐겁기 때문이었다. (물론 취향은 삽시간에 바뀔 수도 있지만 한 동안은 그러했다.) 서너권되는 책을 한가득 가슴에 품고 돌아가는 길, 그 어떤 부자보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장황하게 말하기엔 별거 아니지만 펼쳐보면 개성가득한 순간들의 동질감 앞에서 '어?'는 내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친한 선배는 내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늘 떨어질까 말까 위태롭게 서있던 나의 립스틱을 티 나지 않게 테이블 중앙으로 옮겨주었다. 밥을 먹을 때면 "아 진짜? 그 드라마 결말이 그래?"라고 답 하면서 옆 자리 사람의 물컵의 물을 채워주고 있었다. 나는 선배의 그 다정함이 참 좋았다. 대체 선배는 몇 개의 눈을 가진 걸까 신기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의 섬세함은 비단 카페나 식당에서 그치지 않았다. 힘들어 눈물이 차오르던 날 아무 말 없이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먼 길을 함께 걸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면서도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오는 그녀는 내가 받자마자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셈케이야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요즘 너무 바빠서 목소리도 못 들었다 싶어서 말이야. 잘 지내지?" 유독 신기하리만큼 힘든 날이면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더 시간이 지나 조카가 '이모'라는 말을 하게 되자 영상통화로 바뀌면서 새로운 힐링타임이 되었다. 사소한 배려심으로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 생각했고 그 덕에 퇴근길 "이모 보고 싶어."라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따스함을 선물 받고 있다. 선배가 좋아 함께 회사 다니던 시절 주구장창 들이대던 과거의 나를 칭찬할 만큼 나에게 다가오는 '어?'의 파급력은 결코 나약하지 않음을 한번 더 확인했다.


 연애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의 '어?'. 긴 휴가를 본가에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 그에게서 카톡이 아닌 문자가 왔다. "아날로그 좋아하는 우리 셈케이. 휴가 끝나서 서운하겠다? 휴가의 끝을 내가 장식해 주지!"라는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운 문자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카페의 커피 쿠폰을 보내왔다. 이제는 과거의 당신이기에 의미없는 말일지라도, 나는 그날 그 문자를 보고 코끝이 찡했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너무나도 잘 알아주는 당신과 꽤 멋진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쉽게 보면 '감동받는 순간'이라 표현할 수 도있겠지만 오묘하게 다르다. 물론 긍정적인 마음이 둘러싼 생각들이지만 바늘구멍만큼 작은 취향적 구멍을 관통했을 때의 '어?'의 열기는 쉽사리 꺼트릴 수 없다. 덕분에 오랜만에 그와의 문자 스토리가 떠올라 피식피식 웃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목숨만 부지하던 찰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거절을 누르며 아래와 같이 문자(자동완성문자)를 보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을 받고 그 꽉 찬 지하철 안에서 혼자 터지고 말았다.


(예전에 캡처해 둔 거라 미련쟁이 아님을 안내드립니다 허허)


 

우리는 이러한 '어?'의 반복을 '결이 맞다'라고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때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커피 이야기를 하다 그가 이러한 말을 했었다.

 "저는 무조건 아침에 커피 한잔을 사서 출근해요. 그게 그냥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주는 가성비 좋은 선물이랄까?"

 '어?' 이 남자, 나랑 같은 생각을 하네. 출근길에 커피를 사는 사람은 말도 안 되게 많다. 그러나 각자의 이유는 다 다를지도 모른다. 카페인 수혈을 위해서, 습관이 되어서, 그냥 맛있어서. 앞선 이유들이 내가 매일 출근길 커피를 사는 이유에 포함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고 이곳까지 온 나를 위한 작은 보상과 같은 의미도 더했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도 그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거라 확신하지만 타인의 입에서 같은 이유를 듣고 있자니 순간, 이 사람과 연애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감정의 과속이 생겨나곤 했다. '공감', '동질감'이 이토록 무서운 감정이다.


 물론 때론 반대 '어?'의 오류로 나의 판단을 너무 맹신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때도 있다. 예컨대 연애 상담을 부탁해온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 얘 꽤 고생하겠는데?'라고 판단되면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차마 거짓말로 덮어 온갖 달콤한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깨달은바지만 내일 당장 깨질만한 사유를 안고 찾아오더라도 타인의 연애는 그저 응원만 해줘야 함을 배웠다. 백날 천날 목에 핏대 세워 말해줘도 결국 새로운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기의 커플이 되어있기에 애써 힘 빼는 무모한 짓을 최근 와서야 포기했다. 그러고나니 세상이 아름답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었지만 결과적으로 삶에 있어서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며 무엇보다 양쪽 다 같은 감동을 얻는다는 것이 확률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이 어렵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끼게끔 해준다.


 남녀가 처음 만나는 날, '어? 저도 그 드라마 좋아하는데', '어? 저도 그 맛집 자주 가는데'와 같이 일률적인 공감멘트는 크게 힘을 얻지 못한다. 아침마다 오늘의 운세를 꼭 본다던가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보고 골라 읽는다거나 퇴근길에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을 무조건 듣는다던가. 특별하지 않지만 본인의 색이 묻은 습관 속에서 찾아낸 귀한 동질감은 꽤 높은 호감도를 선사한다.


 오늘부터 또 특이한 습관 몇 개를 더 만들어봐야겠다. 누군가의 반복 패턴 속에 녹아들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내 삶은 숱한 '어?'가 생겨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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