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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Apr 19. 2024

11 결혼식 축사만 세 번째



 축사만 세 번째다. 대학시절 카페 알바로 만나 함께 얼굴담당(우리 피셜)이었던 동갑내기 친구. 당시 서로 남자친구랑 싸우기라도 하는 날엔 약속이라도 한 듯 근처 술집에서 만나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셨다. 지금 떠올려보면 우린 비록 연애가 삐걱대도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그 순간을 아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부탁에 선뜻 축사를 하겠다 했다. 그녀의 결혼식이 나의 첫 축사였다.


 그녀는 남편을 똑 닮은 딸을 낳았다.


 두 번째 축사는 첫 회사 동기였다. 그녀는 옆자리에서 일하다 말고 별안간 모니터 앞에 엎드려 훌쩍이고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회사 옥상으로 데려가 자초지종을 들으니 롱디 중이던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일이 생겨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나원참. 그녀는 그날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했다. 그녀에게 "너는 지금 네 남자친구를 미워하지만 난 안 미워. 널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인 걸 아니까."라는 내 기억엔 사라진 그 감동스러운 멘트가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고마웠다고. 그녀를 울렸던 남자친구와 10년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축사를 부탁했다. 그때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 또한 남편을 똑 닮은 딸을 낳았다.



 친한 동생이 커피를 마시다 말고 책 한 권을 꺼냈다. 선배가 좋아할 만한 책이라 샀다며 수줍게 건네더니 이내 본심을 드러낸다.


 "선배 혹시 괜찮다면 축사해줄 수 있어요?"

 "너도 딸을 낳고 싶은 게냐?"


 그녀는 호탕하게 웃다가 결혼식 축사는 꼭 내가 해줬으면 좋겠다 말했다. 웃음기 없이 말하니 다소 무서웠지만 평소 부탁이라곤 일절 하지도 않던 그녀가 이토록 각 잡고 말할 정도면 과장 보태 천 번의 고민 끝에 내게 말한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해주지. 고마워. 나한테도 의미 있겠다."

 "제가 더 고맙죠. 오늘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그녀는 내가 소팀장이 되었을 때 신입으로 입사한 후배였다. 스물일곱의 나와 스물다섯의 그녀의 첫 만남이 아직도 선하다. 실장에게 한껏 깨지고 자리에 돌아오니 자리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대신해 모든 일을 끝내놓았다. 생색 한번 안 내고 말이다. 술 한잔 걸쳐 취하는 날이면 매일 고백하곤 했다.


 "소심해서 평소엔 말하지 못했지만 선배를 만난 건 내 삶의 큰 행운이야."


 그 누적의 결과로 몇 주 뒤, 그녀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읊게 되었다. 기혼자의 삶을 먼저 살아보고 깨달은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기에 어떤 이야기로 채워볼까 한참을 고민하며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더 이상 그녀는 남편과 싸운다 하여 내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밤새워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또 다른 그녀도 남편으로 인해 내 앞에서 훌쩍이지 않는다. 우리들이 머물러 있는 그곳은 여전히 마음속에 있지만 각자 살아가는 삶은 무수히 변하고 달라지고 바뀌고 있다. 한 때는 서글펐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이번에도 그녀의 축사를 마치고 시간이 흘러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의 형태가 달라져 책을 공유하지 않을 수도, 그녀에게 영원히 함께하고픈 선배가 더 이상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진심을 다해 축사를 준비하려 한다. 비록 우리의 모습은 끊임없이 바뀔지언정, 그래서 서로의 안부조차 희미해지더라도 온 진심을 다해 축하할 수 있는 그 소중한 하루를 남겨 둘 수 있을 테니.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하지 않은 날마저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동반자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겠습니다. 온 마음 다해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녀마저 딸을 낳는다면 나는 진정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기이한 초능력이 있음이 분명할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글을 다듬어본다.


 그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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