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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theless Feb 14. 2020

반지하의 반전.

연희동 “Pouring out”


연희동 뒷골목의 뒷골목길 반지하

그곳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작은 카페.


그 앞을 다가서서야 겨우 보이는 간판을 지나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될 법한 출입문을 연다.


코를 날카롭게 건드는 향.

코를 은은하게 적시는 향을 뚫고 

매대 앞에 섰다.


결국 마시는 것은 아메리카노일 테지만

그럼에도 메뉴판을 훑는다.


재밌어 보이는 것이 가득하다.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내 손을 떠난 체크카드를

긁은 직원은 카드와 함께


글귀가 적인 쿠폰 하나를 쥐어준다.


잠시 멍하니 글귀를 바라본다.


10잔을 먹으면 한잔을 공짜로 줄 뿐인

그 쿠폰이 묘하게 생각을 강요하는 듯하다.



테이블에 앉아 다시 한번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건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나는 나름의 이야기로 이 뜻을 각색해 그저 이곳에서 느끼는 것들과 연결 지어보려 한다.




가난하고 풍요롭다.


연희동이라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마을에 터를 잡기 위해 차선으로 선택했을 반지하.(아닐지도)

하지만 그것을 풍요라는 감정으로 바꾸기 위해 실행한 그들이 만든 분위기. 힘을 빼고 다시 힘을 싣는 물건들이 유기적으로 기능한다. 가난과 풍요가 섞여 함께 향유한다.


그쯤에

커피가 도착한다.




차갑고 뜨겁다.


단순히 “따아” 와 “아아”를 파는 곳 일지도 모르나 그것은 순간의 선택에 따라 기분을 바꿔준다.


더운 몸을 차갑게 식혀주고

차가운 몸은 따듯하게 녹여준다.


그거면 됐다.

오늘은 시원함이 내 안으로 퍼진다.


적당히 맛이 좋다.




명쾌하고 모호하다.


누군가는 찰칵찰칵 셔터 소리를 뿜어낸다. 그 옆에선 소음이라 칭할법한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목적이 분명한 이들은 같은 가격을 내고 장소를 이용하지만 전세를 낸 듯하다.


시끄럽지만 공허해 보인다.


그런 와중의 한 편에선 그저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연신 노트북을 두드리기도 한다.


조용하지만 치열해 보인다.


이 순간 저마다의 시간이 흘러간다.




가리우면서 드러난다.


밖에선 이곳의 실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모르고 지나쳐갈 법한 느낌인 듯 아닌 느낌. 다만 그 안의 분위기는 은은하다.


낮은 층고가 주는 깊이감

은은한 조명이 주는 포근함이


Pouring out.

(쏟아져 나온다.)


오감에 살짝 신선한 자극을 퍼진다.

가려진 곳 뒤에 드러난 것들이


흥미롭다.




기억하고 지운다.


커다란 우퍼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이 귀가 아닌 가슴에 흐른다. 순간의 음악을 즐기며 기억하기 위해 핸드폰에 노래 찾기 버튼을 누른다. 홈버튼과 음량 버튼을 눌러 스크린 샷으로 저장.


이내 3분 남짓한 음악이 끝나고

다음 음악이 흘러나온다.


잠깐 이 노래는 더 좋은데?

방금 들은 노래가 기억 속에서 옅어진다.


기억에서 지워질 때쯤 집에 가면서 들어야지

기록해두었으니까.


하지만 이어폰의 음량은 “맛”이 덜 하다..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있다.



아무것도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뽐내진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이 공간에 어우러져 좋은 분위기를 전달한다.


곳곳을 비추는 작은 조명들. 피식 웃음을 유발하는 화장실의 이미지 하나, 글귀 하나. 선별된, 신청된 저마다의 감성으로 가득 찬 음악들. 정성스레 커피를 준비하는 바리스타의 표정과 자세를 천천히 음미하고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축인다.


좋다.


가방 안쪽에 쿠폰을 넣고

간단한 목례와 함께 이곳을 나선다.


다시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뒷골목.

하지만 그 뒷골목 안에 재미난 것들이 숨어있다.


연희동


“Pouring out”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재된 섬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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