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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플 Oct 02. 2022

이토록 다채로운 인생

LIFE IS COLOR

 생은 쉼 없이 모순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사람마다 목표한 바가 다르겠지만 나의 삶은 안정으로 가는 여정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실로 다양한데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하나의 수학 문제에 하나의 풀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 공식 하나로 1분 만에 풀리는 방법, 무작정 숫자를 나열해 기어코 답을 찾아내는 방법 등. 수학과 생의 다른 점은 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나보다 먼저 평안에 도달한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들의 정답을 말했고, 각기 다른 그들의 조언에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방향을 잡지 못한 배는 흔들리기 마련이고 나의 삶은 현기증의 연속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


 나는 고정된 루틴이 싫다. 이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나는 늘 평안과 적요를 갈망하나 쉽게 지루함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싫증이 난다. 나의 안 좋은 습관 중 하나는 잘 질린다는 것이다. 무얼 하든 쉽게 권태를 느꼈다. 그래서 삶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늘 불안했다. 안정적인 이 생활에 언제 염증을 느낄지 몰라 마음 한편에 근심과 초조가 자리했다. 우스운 일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모순된 존재가 아닌가.





 ‘오늘이 50% 할인 마지막 기회!’

 핸드폰 화면에 뜬 광고성 알람을 며칠째 무시하고 있었다. 이럴 거면 어플 알람 설정에 들어가 알람을 모조리 다 꺼버리면 될 일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나,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혹시나 내가 놓쳐버린 훌륭한 정보에 탄식하며 뒤늦게 아쉬워하는 일이 생길까 봐 차마 알람을 끄지 못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쏟아지는 광고 알람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한 번에 지워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왜 이다지도 미련한지! 저 알람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세 번은 본 저 광고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올림피아 자그놀리(Olimpia Zagnoli) 특별전 LIFE IS COLOR’였는데, 사실 50% 할인보다 더 이목을 끈 것은 아래 적혀있는 ‘회원 대상 특별 주말 도슨트 진행 / 선착순’이라는 문장이었다.


 평소라면 슬쩍 보고 넘겼을 특별한 것 없는 문장이다. 소비자를 혹하게 하는 ‘회원 대상’이라든가 ‘특별’과 같은 것들은 실제로는 별반 다를 게 없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내 뇌가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며칠째 쉴 틈 없이 활자를 눈과 뇌에 쑤셔 박았더니 지식을 습득 기억하는 과정에서 뇌가 탈진해버린 게 느껴졌다. 도슨트를 들으면 가이드가 주입하는 정보를 그저 듣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해당 이벤트는 9월 25일이 마감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고 마침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이었다. 이래서 어플 알람을 끌 수 없는 거다. 알람을 꺼놨으면 놓쳤을 이달의 훌륭한 정보인 LIFE IS COLOR 특별전 덕분에 다음 달도 알람 설정을 끄지 못하게 되었다.

 특별한 약속이나 일정이 없는 일요일엔 오후 3시 정도까지 정해진 루틴이 있다. 먼저 오전 9시 20분 아침 요가 수업을 70분 듣는다. 요가를 시작한 지는 약 9개월, 친구 P의 추천이었다. 처음 목표는 머리서기(살람바 시르사아사나)를 하기였는데 그건 이미 2개월 차에 달성했다. 목표는 달성했지만 나는 여전히 요가 수업을 다니고 있다. 헬스는 흥미가 생기질 않고 운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몸이 아플 나이인지라 연이어 수업을 연장하다 보니 어느덧 9개월이 되었다. 언젠가 요가 수련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수업이 끝난 후 귀가해 샤워하고 짐을 싸 집 앞 카페에 간다. 가져가는 물품은 블루투스 이어폰, 핸드폰, 책 2권,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 각종 충전기. 챙기는 물건들은 읽는 책의 종류가 바뀔 뿐 거의 고정적이다. 카페에 도착하면 오전 11시 전후인데, 커피와 브런치(주로 샌드위치. 나는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일주일 내내 삼시세끼 먹을 수 있을 정도로)를 주문한다. 커피가 제조되는 동안 부지런히 테이블에 휴식을 위한 세팅을 진행한다. 먼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아이패드에서 넷플릭스를 켜 즐겨보는 드라마를 튼다. 그때쯤 주문한 메뉴들이 완성되었다는 진동벨 혹은 알람이 울린다. 드라마를 보면서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재밌으면 이어 보고 아니면 책을 뒤적인다. 그러다 문득 글이 쓰고 싶으면 블루투스 키보드를 아이패드에 연결해 글을 쓴다. 책을 읽지 못하는 날도 있고 글을 쓰지 못하는 날도 있다. 끊임없이 드라마만 정주행하다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 가끔 카페에 가기 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날도 있다. 그다음 루틴은 동일하다. 카페에 가서 커피와 브런치를 주문하고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가끔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날도 있었다.


 이 패턴은 별일이 없으면 한동안 유지된다. 몇 주간 끊임없이 주말에 일정이 잡히면 카페에서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몇 주간 여일한 삶이 반복되면 어딘가 숨어있던 무료가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이다. 방심하면 치고 들어오는 권태를 막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고역이다. 살아내는 것은 참으로 따분했다.

 인생에는 여러 진리가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늘 가슴에 품고 되새기는 게 있다. ‘기대와 실망은 비례한다’는 것.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나는 바라지 않기 위해 부단히 연습했다. 그것이 사람이든 감정이든 어떠한 목적이나 대상이든. 기대가 없으면 이렇게 좋은 일도 생긴다. 전시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글까지 쓰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최근 어떤 예감이 들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이런 경우 감보다는 예언에 가까워서 대개는 정확히 들어맞곤 했다. 곧 이 생활이 질리겠구나. 주저 없이 짐을 싸 카페 문을 열고 나섰다. 도슨트는 오후 2시와 4시에 있었고 집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출발하면 4시 전엔 충분히 도착할 터였다.


 운전도 지겨워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 혹시 몰라 챙긴 책을 읽다 보니 광화문 역에 도착했다. 미술관에 도착해 티켓을 발권하려는데 데스크에 놓인 안내문, ‘이번 주말은 전시관 사정으로 도슨트가 없습니다’. 김은 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는가. 직원에게 재차 도슨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아마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주말 나들이를 온 인파 사이를 천천히 부유하며 일러스트를 보고, 꼼꼼히 읽었다. 과감하고 솔직한 그의 생각이 좋았다.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그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걷다가 허리가 아프면 영상 전시물을 위해 깔아놓은 방석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어떤 그림을 보면 함께 여행했던 Y가 생각났다. 뜨거운 태양과 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안부 카톡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머 일러스트레이션. Y와 함께했던 여름의 다합과 바다가 떠올랐다. Y와 바다는 운명공동체와 같다.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를 담은 안내 문구를 유심히 읽으며 전시관을 나왔다. 판매하는 굿즈들을 둘러보다 마음에 박혔던 그림의 북마크를 샀다. 미학을 사랑하는 P가 생각나 그에게 줄 작은 엽서도 함께 구매했다. 서로의 삶이 바빠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조만간 전달할 예정이다.


Orgasm, The Guardian_2018 / 영국 신문 가디언 지에 실린 여성의 쾌락에 관한 기사의 삽화. P에게 전달할 엽서의 그림이다


 만족스러운 구매 후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쉬웠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광화문역 근처 빵집을 검색했다. 어느 베이커리의 무화과 크림치즈가 맛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천천히 걸어가 무화과, 올리브, 토마토 크림치즈를 샀다. 집에 남은 식빵이 있으니 저녁 식사로 딱 맞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계획대로 식빵을 뜯어 크림치즈를 발라 먹었다. 내일은 집 근처 빵집에서 식빵을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J는 이 사진을 보고 빵을 먹다가 찍은 거냐고 물었다. 빵이 부드러워 찢어진 거라 변명하며 크게 웃었다.



 글이 쓰고 싶었다. 그날 내가 느낀 충만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표현이 미진해 다 전달이 되었을진 모르겠다. 너무 쓰고 싶은 마음은 도리어 독이 되어 글을 망치는 듯도 하다. 아이패드를 켜고 한참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최근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막힌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이 그러했다. 너는 글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언젠가 스쳐 지나간 이가 한 말이 불쑥 생각났다. 넘치는 말들은 되레 손가락을 주저하게 한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도 계속 써 내려가면 그뿐인 것을. 그러다 보면 갈피를 잃은 손이 어느 순간 길을 찾아 키보드를 위를 종횡할 것이다. 궤도를 이탈해 헤매는 나의 삶도 그러하다.

 어느 순간 길을 찾아낼 게 분명했다. 언제나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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