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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플 Sep 22. 2022

2. 이 여행 갈 수 있을까요?

서른이 되어도 가장 어려운 건 사람이라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요.

 ‘선천이라는 말이 있다. 먼저 , 하늘 .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고 있는 . 미역국을 얼추 서른  먹으면서 깨달은  나의 선천은 외로움이라는 . 해가 저물어 불을 켜지 않은 자취방에 어둠이 드리우고,  톨의 소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적막이 저변에 깔리면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순식간에 나를 잠식했다. 몸에 뚫려있는 구멍이란 구멍으로 비릿한 고독이 가득 메워 자주 숨이 버거웠다. 숨은 생명의 기본이라, 숨이 버거우니 삶이 벅찬 것은 당연지사였다.  시간 동안 연애하지 않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혼자서도  지내니까 심심하지 않은가 .’라고 말했다. 누군가 곁에 있음에도 외로운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그저 입술로 호선을 그리며 혀끝에 감도는 대답을 숨겼다. 숨기지 못한 감정은 때론 약점이 되는 법이니.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A와 나는 급하게 우정을 쌓아 올렸다. 낯을 가리지 않는 나와 거절을 어려워하는 A,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최근 친구와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며 여행지에서의 일들을 풀어놓는 A에게 나는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 이렇게 물었다. ‘나랑도 여행 갈래?’ A는 망설임은 사치라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너무 좋지.’

 찬물도 급하게 마시면 체하는 법이랬다. 급격하게 다져진 우정과 성급한 결정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비행기를 예매하기 직전까지 A에게 적어도 열 번은 되물었다. 잘 생각해봐. 예매하기 전에 취소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부담스러우면 가지 않아도 돼. 예전에도 여행이 취소된 적이 있어서 힘들었으니, 아니다 싶으면 차라리 지금 얘기해줘. 여러 번의 당부 끝에 A와 나는 괌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미안해. 그때 네가 너무 신나 보여서 흥을 깨고 싶지 않았어. 여러 번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 그렇다고 네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내가 나빴어. 너는 할 말을 다 하는 성격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해서 그때 거절을 못했어.

 내 잘못이 아니라고 A는 말했지만 나는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나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나를 타박하듯 느껴졌고, 할 말 다 하는 성격이라는 말에 우리가 서로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상에 지쳐 도피하는 사람이 신이 나면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또한 할 말을 다 한다는 말은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이미 항공권을 취소했고 만약 나 역시 취소한다면 취소 수수료를 부담하겠다는 A에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한 감상을 짧게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여행에 실망이 깔렸고 우리의 나이가 서른 언저리라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괌으로 휴가를 간다고 하자 자기도 가고 싶다며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학교 선배 B가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여행을 취소했는데, 선배는 일정 변동 없는 거죠?

 전혀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고 나서 숙소를 예약했다. 추석 연휴 전까지 혼자 일정을 보내고, 이후 선배가 합류하면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숙소를 예약한 것은 이 여행을 속행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휴가를 망칠 수 없어! 그러나 마음은 이미 한풀 꺾인 지 오래였다.

 과거 혼자 2주 정도 해외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혼자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낭만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나이가 들수록 겁만 많아지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나의 선천이 두려웠다. 여행을 즐기는 순간순간 찾아올 고요가 서늘하게 덮쳐올 때, 그 찰나의 간극을 메우지 못해 괴물 같은 고독이 나를 좀먹을까 봐 두려웠다. 나는 항상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었다. 도피처에서조차 무언가를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정을 아는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취소해라 혹은 그냥 가라.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후자를 택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괌으로 휴가를 간다고 말한 게 민망해서가 첫 번째 이유요, 딱히 가고 싶은 대체지가 없었던 게 두 번째 이유였다. A와 여행지를 고를 때 내가 가장 피력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조건은 딱 하나였다.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 코로나로 인해 예전보다 항공편이 훨씬 적었기 때문에 7박 8일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안에 다이빙을 실컷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순탄치 않은 휴가의 시작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여행을 속행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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