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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Nov 15. 2023

나의 자연재해 역사의 서막, 동일본 대지진(1)

대지진의 경험으로 얻게 된 소소한 특기란?

나에게는 하나의 소소한 특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진이 났을 때 뉴스를 보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바로 진도 수 맞추기. 진도 4 정도면 사실 꽤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진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진도 2~3 정도의 경우 걸어 다닐 때는 아예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앉은자리에서는 일반적으로 진도 3 정도는 둔한 사람도 느낄 수 있지만 진도 2와 3을 구분하는 건 지진을 어마어마하게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쉽지가 않다. 그런데 나는 가능하다. 지진을 어마어마하게 겪어본 사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 완전히 귀국한 후 2016년쯤이었을까 어느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가 흔들림을 느껴 가족들에게 '이거 지진인데? 진도 2쯤 되겠는데'라고 말했더니 얘가 지진 많은 일본에 살다 오더니 환각을 느끼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얘길 들었는데,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경주에 지진이 났고 흔들림이 수도권에서도 감지되었으며 수도권은 진도 2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라는 뉴스 속보가 전해져 가족들에게 약간의 인정(?)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일본 관측 역사상 최고의 규모를 기록하고 2만 명 이상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 급기야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도 이어졌던 동일본 대지진.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일본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던 2011년 3월 11일. 점심 식사 후 한창 졸릴 오후 세시가 다 되어갈 무렵, 돌연 회사 건물이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며 지진을 경험했던 적은 딱 한 번. 진도 3의 지진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데 살다가 처음 겪는 일이라 그 짧은 순간에도 가슴이 철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날은 진도 3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직원들 모두가 이 지진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고 깜짝 놀라서 전원이 바로 건물 밖으로 대피를 했다. 큰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모두 대피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채 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위 건물에서 사람들이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땅이 흔들렸으며 길가에 세워진 전신주의 전깃줄이 출렁이고 있었다.


아, 나는 이대로 죽는구나. 마지막으로 연락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때까지의 딱히 길지도 않은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런 건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진부한 설정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마치 슬로우를 걸어놓은 필름처럼 느리게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몸소 깨달을 수 있는 날이었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내가 살던 치바현(千葉県) 북서부에 위치한 가시와시(柏市 *가시와 레이솔의 그 '가시와'가 맞다)의 진도는 5약. 참고로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정해 사용하는 진도는 약한 쪽부터 1, 2, 3, 4로 시작해 5부터는 5약, 5강, 6약, 6강으로 나누어 표기하며 가장 강력한 지진은 진도 7로 정의한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진도를 기록했던 동북 지방(도호쿠 지방)은 진도가 7, 매그니튜드는 9.0으로 관측되었다(우리나라 지진 기사에서 표기되는 '규모〇〇'는 일본에서 쓰이는 '진도'가 아니라 통상적으로 매그니튜드를 의미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진도 분포도. 일본 열도 전체가 흔들렸다

내가 경험했던 5 약의 지진은 회사 건물 안의 선반에 정리해 둔 서류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고 파쇄기 같은 무게 있는 물건이 쓰러질 정도의 매우 큰 흔들림이었다. 심지어 당시 흔들림의 세기에 놀랐던 것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지진이 짧게 흔들리고 끝나는 것에 비해 흔들리는 시간이 길어 더더욱 공포가 컸다. 여진도 계속되었다. 극한의 공포를 느끼던 상황이라 그런지 이날 최초 발생했던 지진(여진이 아닌 본진의 의미)이 몇 분간 지속되었는지, 퇴근하기 전까지 무엇을 했고 회사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언제 퇴근을 했는지 아직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던 것은 불행 중 '크나큰' 다행이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던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역사에 기록된 대지진 현장에서도 다음 날 출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묘하게 안심(?)하던 직장인. 나는 긴장감 속에 집에 돌아와 하염없이 티비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뉴스를 보고 비로소 내가 오늘 겪은 지진의 규모가 어떤지, 다른 지역의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동북 지방 해안가에 최대 6m가 넘는 쓰나미가 도시를 집어삼켜 자동차와 사람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화면, 머리에 헬멧을 쓴 기자가 교통수단이 끊겨 몇 시간 거리의 집까지 걸어서 귀가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화면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모든 통신이 끊겨 핸드폰은 무용지물이었고 갑자기 집에서는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쌀쌀했던 3월 초순. 찬물로 샤워를 해야 하나. 나는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믿기지 않게 재난 영화에서나 보던 상황이 고스란히, 그리고 담담히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동이 틀 때까지 크고 작은 여진은 계속되었다. 어느 정도의 흔들림에 밖으로 대피를 해야 할까? 지진이 잦아들기를 그저 기다려야 하나? 처음 겪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데다 일단 간헐적으로 흔들림이 지속되니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애매한 상황. 의도치 않게 잠이 들 경우, 자는 도중에 혹시 여진으로 건물이 붕괴해 죽을 가능성에 대비해 나는 화장을 지우지 않고 눕기로 했다. 혹시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때 근처에 회사가 있으니 회사 사람들이 나의 신원을 증명해 줄 텐데 화장을 지운 날 알아보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권과 통장 등 중요한 물건을 담은 작은 가방도 몸에 걸고 누웠다. 나는 아직도 동일본 대지진 이야기를 할 때 너무 진지하고 슬픈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농담 섞어 이 얘기를 하는데 사실 이건 당시엔 절박함이 담긴 행동이었다. 내 시신이 신원 확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 품에 무사히 도달해야 하니까. 허무맹랑하고도 진지하게 생사를 걱정할 만큼, 일본 열도뿐만 아니라 내 인생을 뒤흔든 대지진이었다.


전 세계 지진 역사에 기록된 동일본 대지진. 이때부터였어요. 자연재해를 온몸으로 맞고 다니기 시작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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