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딸기체리수박 Jun 13. 2022

재채기

[글쓰기 좋은 질문 642] 그중 27번째

 당신의 컴플렉스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들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뚱뚱한 것? 적은 머리숱? 작은 키? 뭐 이런 것들이라고 대답할까? 어쩌면 저런 것들은 꽤 일반적인 컴플렉스니까 저런 대답이 많겠지. 물론 그들은 그 컴플렉스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들과 같은 고민을 품고 사는 동지는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을 만한 컴플렉스니까.


 그들의 컴플렉스에 비하면 내 컴플렉스는 사소한 듯 유난스럽다. 어쩌면 '그게 무슨 컴플렉스야?' 라고 코웃음 칠 수도 있다. 내 컴플렉스는 재채기다. 유난히 큰 재채기 소리.


 재채기 소리가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


 재채기 소리가 커봤자 얼마나 클까 싶다만, 내 재채기 소리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높고 우렁차고 귀가 따가운 굉음. 심지어 가끔씩은 집 밖에서도 내 재채기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내가 일부러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재채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채기를 한 다음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를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는 사람, 귀를 막고 있는 사람, 귀가 아팠다며 은근히 구시렁대는 사람. 


 내 몸에 만들어내는 이 굉음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친오빠는 내게 신경질 내는 일이 잦았다. 


 "아 존나 좀 조용히 하면 안 되냐? 일부러 그러냐?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데 기침 존나 괴상하네."


 내 재채기 소리를 유난히 싫어하는 오빠가 공부까지 잘하는 탓에, 난 계속 오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하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봤자 재채기 소리는 거실까지 흘러 들어갔지만, 이게 내 최선이었다.


 그러다 오빠의 수능 시험 한 달 전. 오빠의 한 마디에 난 잠시 친척집으로 보내졌다.


 "아 진짜! 나 이제 수능 한 달 남았다고! 쟤 때문에 빡쳐서 한국대 못 가면 엄마가 책임 질 거야? 쟤 어떻게 좀 하라고!"

 

 친척들도 내 재채기 소리를 싫어하는 탓에, 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나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빠가 명문대생이 된 다음 해, 난 서울 끝자락에 붙어 있는 어떤 대학교에 합격했다. 


 "엄마...나 집이랑 학교가 멀어서 이제 자취하고 싶어..."

 "집에 돈이 어딨다고 자취를 해. 같은 서울에서 그냥 왔다 갔다 해야지."

 "자취하면 안 돼?"


 사실, 집과 학교가 멀었어도 자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오빠가 없는 공간에 혼자 살면, 조금 더 편하게 재채기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끝내 부모님은 자취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난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털어서 학교 근처 제일고시원에 살게 되었다.


 제일고시원. 난 제일고시원 제일 구석에 있는 조그만 방에 살게 됐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고, 난 그곳에서 편하게 재채기를 할 수 있으리라. 


 고시원에서 첫 날을 보내고 방문을 나섰을 때, 내 방 앞에는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었다.

 '단체 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기침하실 때 신경 써 주세요.'

 '재채기 소리가 너무 큽니다.' 


 생각보다 제일고시원의 방음 상태가 좋지 못했다. 식은땀이 죽 흘러내렸다. 그나마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오빠처럼 면전에서 비난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포스트잇이 더 나았다. 난 그 이후로 사람이 없는 시간에 나가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시간에 돌아와서 방 안에 꼼짝 않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재채기를 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몇 가지 알아낸 것들이 있었다.

 1.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따뜻한 도라지 차를 마시면 재채기가 줄어든다.

 2. 언제나 물을 자주 마신다.

 3. 습한 날에도 가습기를 켜놓고 잔다.


 밖으로 나갈 때도 텀블러에 도라지 차를 가득 채워 갔고, 재채기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래도 어쩌다 재채기가 좀 많이 나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문 앞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아저씨, 재채기 조용히 해주세요.'


 내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내 재채기 소리에 적응을 해버린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많던 포스트잇은 한 장으로 줄어들었다. 단 한 명만은 내 재채기 소리를 허용할 수 없었는지, 재채기를 하는 족족 방문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남자로 생각하는지 날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 사람이 보낸 포스트잇이 수십 장 쯤 쌓였을 때 쯤, 난 그 사람의 글씨체에도 익숙해졌다. 


 '조용히 해주세요.'

 '재채기 조용히 해주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이랑은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근데 포스트잇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으므로, 그냥 고시원에 있는 모두와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그 날도, 고시원 복도에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을 만한 시간을 골라 귀가하고 있었다. 


 고시원 앞. 처음 보는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가려는데, 


 "저기요. 제일고시원에 사세요?"


 그 남자는 담배를 끄면서 나를 쳐다봤다. 


 "왜요?"

 "저도 여기 사는데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서요. oo대 다니세요?"

 "네...그런데요...?"

 "저도 oo대학교 다녀요. 경제학과."


 그는 웃으며 자신의 전공책을 들어 올렸다. 두꺼운 책 표지에는 그의 학번과 이름이 쓰여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용준. 어디서 많이 보던 글씨체였다. 조용준... 그는 나에게 '아저씨 조용히 해주세요.' 포스트잇을 붙이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조용'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그의 이름을 보고 그가 끈질긴 포스트잇의 주인공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혹시 내가 그 사람인 걸 알고 이러는 건가? 내 마음과 달리 조용준은 평화로웠다.


 "같은 고시원에 같은 학교 다니는데 인사나 하면서 지내요."


 그는 번호를 알려달라는 듯, 핸드폰을 내 앞에 내밀었다. 난 목이 계속 간지러웠다. 곧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텀블러에는 도라지차가 한 모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서 재채기를 해버리면 분명 저 조용준이라는 남자가 베풀고 있는 친절이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010...xxxx...xxxx 


 손에 모터가 달린 듯 번호를 찍고 어색한 인사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곤 조용준을 등진 채 학교 방향으로 꽤 많이 뛰어 왔고, 정문이 보일 때쯤 돼서 재채기를 했다. 한 번 시작한 재채기는 멈추지 않고 5~6번을 반복했다. 


 조용준 앞에서 재채기를 하지 않은 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재채기 소리를 신경 쓰며 포스트잇을 남겨온 사람인데, 그게 나인걸 알면 오빠처럼 나에게... 그럴 것이 분명했다.


 그날 저녁, 조용준에게 카톡이 왔다.


조용준- 저는 경제학과 22학번 조용준이에요! 혹시 이름이 뭐예요? 

나- 저는 최유진..이고 저도 1학년이에요. 

조용준- 근데 같은 곳 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지? 넌 나 본 적 있어?

나- 아니요. 저도 처음 봤어요.

조용준- 말 편하게 해. 아 근데, 너도 알지? 우리 고시원에 재채기 엄청 크게 하는 남자 있는 거?

나- 아 그래?

조용준- 몰랐어? 여기 고시원 사람들 다 알 텐데? 엄청 싫어하잖아.

나- 아... 너도 싫어해?

조용준- 어. 소리 진짜 미쳤어. 맨 구석에 살잖아. 아 맞다. 너는 여기서 어느 쪽에 살아? 


 말해주고 싶었다. 맨 구석에 살고 있다고. 내가 그 아저씨라고.


당근을 통해 글쓰기 모임을 모집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일곱 분 정도가 모여서, 글쓰기 좋은 주제 642라는 책에서, 원하는 주제를 골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제가 고른 주제는 <재채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를 회사에서 내보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