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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Jul 16. 2022

학창 시절 중 가장 떨리는 반배정 날. 그 이후 20년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냐면,

 내가 아영이와 친구가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가 14살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전인 셈이다. 이렇게 대외적으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라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영이를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고, 아영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도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우리가 나름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영이는 그 시절의 나를 거의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나는 초등학생 시절의 아영이 모습을 꽤 많이 기억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복도와 운동장을 웃으며 뛰어다니던 아영이.


  아영이는 운동을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볼 때마다 땅에서 약간 몸이 떠 있는 상태였다. 어딘가로 뛰어가거나 점프를 한 상태였다. (마치 레드벨벳 웬디의 아침 출근길 같았다. 출처 : 링크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eHf/3874987?svc=topRank) 아영이는 뭐가 그렇게 신나서 늘 저렇게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었을까?

웬디 출근길_공중부양

 난 이렇게 아영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영이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우린 ‘중1 때부터 친구가 된 것’으로 합의를 봤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친구가 된 날은 중학교 1학년 입학식 날이었다. 온전한 봄이 될락 말락 하는, 약간 추웠던 그날. 왜 그렇게 추운 날 어린애들을 교실이 아닌 운동장에 세워놓고 입학식을 했는지는 지금도 이해 안 되지만, 어쨌든 우리는 약간의 긴장 상태로 운동장에 있었다.


 1학년 8반 구역 맨 앞 줄에는 내가, 두 번째 줄에는 아영이가 서 있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다른 이들도, 학창 시절 새로운 반 배정 날의 묘한 긴장감이 기억날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1년을 함께할 괜찮은 친구를 찾아야 했고, 나 빼고 다른 애들끼리 무리를 지어서 이미 친해진 것 같으면 그것만큼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러다간 성격도 잘 안 맞는 친구랑 1년 내내 억지로 함께 다녀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 시절 내게 학창 시절은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기에 반배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게 맨 앞줄에 서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뒤로 쏠려 있었다.


 ‘아... 맨 앞에 서지 말걸... 이러니까 애들이랑 얘기를 할 수가 없잖아. 저 뒤에 애들은 이미 친해진 것 같은데... 아 근데 왜 여기는 우리 초등학교 나온 애들이 이렇게 없지? 아... 진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영이는 두리번거리다 어쨌든 제일 가까이 서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아영 - 저기, 너 혹시 여기 아는 애들 있어?

  -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점에 안도하며) 아니?

 아영 - 나도 아는 사람 없는데, 너 어느 학교에서 왔어?

  - (너랑 같은 초등학교 다녔는데...) 나? 너랑 같은 학교 다녔는데?

 아영 - 아, 그래? 아 미안. 기억이 안 나서. 이름이 뭐야?

 

 어쨌든 우린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덕에 잠정적으로 앞으로의 1년을 함께 하기로 무언의 합의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어리석은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던지 갑자기 아영이 앞에서 노래와 춤을 췄다.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나름대로 생각한 율동까지 했다. 입학식 며칠 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것을 따라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영이는 그 예능 프로를 보지 못했는지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율동의 포인트는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훗날 아영이는 그 모습이 너무 괴기스러워서 내게 말 건 것을 후회했었다고 한다. ‘앞으로 쟤랑 1년 동안 친구를 하고 지내야 되는데, 아... 가능할까?’ 하면서 말이다.


 나도 눈치가 꽤 있는 편이어서, 아영이가 내 율동과 노래에 당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당장 그런 행동을 중단했다. 그 덕에 우린 안정적으로 친구 상태에 돌입할 수 있었고, 그 뒤로는 어디든 같이 다니는 단짝으로 지냈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나도 곧장 집으로 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늘 편의점에 들러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에 김치까지 사 먹었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까지.


 아영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라면 반 개를 겨우 먹을 정도로 양이 적었는데, 아영이를 만나면서 라면 하나쯤은 우습게 해치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아영이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아영이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년쯤 지나자 난 10kg쯤 증량하여 난생처음 50kg를 넘기게 되었다.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믿었지만 그 뒤로 살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아영이를 탓할 수 없는 것이, 나는 아영이에게 감자탕, 추어탕, 곱창, 순댓국 등 보통의 중1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을 소개했고, 그녀 또한 10kg쯤 살이 쪘다. 그랬기에 우린 서로가 서로를 탓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같이 살을 빼야 할 것 같다고 헬스장을 같이 다니기도 했는데, 먹자골목에 위치한 헬스장을 선택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욱 살이 찌는 비극을 맞이했다. 게다가, 그때 찐 살은 지금도 빠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아영이와의 어린 시절 향수에 잠긴 나와는 달리, 아영이는 여전히 소개팅남과의 카톡으로 흥분 상태였다. 소개팅남에 대한 조언도 해 줄 겸, 어린 시절 이야기도 좀 해볼 겸, 갑자기 아영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퇴근길에 아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소개팅남은 좀 어떤 거 같아?

아영 - 착한 거 같아.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어. 현주야. 진짜 고마워. 나 사실 이제는 진짜 누군가를 만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소개팅도 해보고 노력도 진짜 많이 하겠다고 다짐했거든.

 - 아, 그랬어?

아영 - 어. 근데 그 마음먹자마자 너한테 소개팅하겠냐고 연락이 온 거야. 근데 그게 너무 신기해.

- 갑자기 그 마음을 왜 먹은 거야?

아영 - 음... 그냥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서. 누구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알아보고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서?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아영이. 아영이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것일까?


 - 아영아, 근데 우리 이거 책으로 써볼래?

아영 - 어? 뭘?

 - 그냥, 지금 이 과정들. 소개팅 준비하는 너도 너무 귀엽고, 너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겠으면서도 모르겠거든.

아영 - 책으로? 내 얘기를?

 - 어때? 별로야?


 갑자기 제안하긴 했지만, 아영이가 싫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좀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아영 - 좋아! 너무 좋을 것 같아! 근데 어떻게?


 다행히 아영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아영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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