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빌라에서 있었던 일
경주에서 55일 동안 만난 10개의 숙소.
지난주에 그중 다섯 개의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했다. 오늘은 나머지 숙소 중 풀빌라를 소개하며 짧게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 브런치북은 <혼자 풀빌라에 다녀온 후 경주 55일 살이가 시작됐다.>는 글로 시작되었다.
https://brunch.co.kr/@ilovesummer/157
이 글에서 아주 간단하게, 혼자 풀빌라에 가게 된 일을 적어두었다.
1. 엄마랑 가려고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풀빌라에 가게 됨
2. 차도 없이 힘겹게 풀빌라에 혼자 방문함
3. 하지만 혼자 치킨도 먹고 잘 놀고 옴
이렇게 보면 'not bad'다. 혼자 잘 먹고 잘 놀다 온 것 같은 느낌인데 실상은 꼭 이렇지만은 않았다.
먼저, 경주 풀빌라, 로즈브리즈 소개
가격 : 평일 기준 풀빌라 13만 원 전후 수준
위치 :
추천 대상
1. (거의 무조건) 차가 있는 분
2. 2~4인 가족/친구/연인끼리 조용하게 풀빌라 가고 싶은 분
3. 큰 풀장에서 수영도 하고 싶은 분
특징,
1. (가격) 서울 근교 가격 생각하면 시설에 비해 정말 저렴하다.
2. (시설) 객실 컨디션도 좋고, 수영장도 매우 넓어서 만족스러움. 내부 풀도 아기 놀기에는 괜찮다.
3. (위치) 차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 차가 없으면 택시 이용해야 함.
4. (팁) 이 근방에 먹을 것 하나도 없다. 딱 하나 치킨만 시킬 수 있다. 먹을 거 안 사가면 치킨밖에 못 먹는다.
5. (서비스) 미리 연락하면 완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 픽업해 주심
풀빌라에서 있었던 일
사실은, 혼자 온 게 아주 조금은 부끄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나 스스로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혼자 풀빌라에 놀러 간다는 것은...
내가 무슨 돈 많이 받고 콘텐츠 찍으러 가는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혼자 풀빌라에 가는게 맞나 싶었다. 혼자 삼겹살 먹는 사람은 들어봤어도 풀빌라 간다는 사람은 못 봤다. 그래서 무척 망설였지만, 사실 로즈브리즈에서 숙박 협찬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혼자라도 당당하게 갈 수밖에 없었다.
로즈브리즈에 가는 길,
첫 번째 위기. 난 차가 없다. 로즈브리즈에 갈 수 있는 버스가 몇 개 있기는 한데 하루에 2~3회 운영하는 버스라 사실상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안돼서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혼자 이렇게 외진 곳을 왜 가는 거예요? 여기 무슨 행사 있어요?"
그 정도로 나 혼자 배낭을 들고 풀빌라를 향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알았지만, 로즈브리즈에는 픽업 서비스가 있다. 보문단지한화리조트 버스정류장까지 픽업/퇴실 지원을 해주신다.)
택시 기사님과 헤어진 이후에는 더 큰 시련이 있었다. 바로 풀빌라 사장님을 마주쳤을 때.
풀빌라 사장님은 일행분이 어디 계신지를 물었다. 차라리 혼자 여기까지 온 마당에 당당하게 "혼자 왔어요."라고 말하면 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짜 혼자 왔다고 하면 (실제로는 정말 정말 아닌데) 뭔가 인생 평생 외톨이로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혹시 여기까지 나쁜 생각으로 온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거짓말하는 것 좋아하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아... 친구는 야근하고 따로 올 것 같아요."라는 의미 없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내 대답을 듣고 사장님은 다시 물었다.
"아, 그럼 친구분은 차가 있으신거죠? 여기 차 없이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서 걱정이 돼서..."
난 웃으며 "네, 친구는 차가 있어요..." 라고 말했다. 사장님이 이걸 믿어주셨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음 날 아침에 숙소 앞에 주차 된 차가 없는 것을 보고 사장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친구분은 결국 못 오셨나요?" 라고...
나도 도대체 내가 왜 거기서 거짓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민망했던 걸까?
더 큰 위기, 먹을 게 없다.
사실 혼자 풀빌라에 온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살짝 민망해서 잘 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게 뭐 대수랴. 그 이후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먹을 게 없다.
정말 먹을 게 없다.
큰일이다.
이걸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보통 풀빌라에 갈 때 간단하게 시내에서 장을 봐서 입실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근데 그 당시 난 너무 지쳤었다. 너무 많은 소품샵을 돌아다녔고,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메고 있어서 더 이상 어깨가 삶의 짐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단 짐을 숙소에 풀고 뭔가를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풀빌라로 들어갔다.
막상 오니까 정말 주변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풀빌라 내에서 뭔가를 구매해서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뭔가를 먹고 싶으면 동냥을 해서 먹어야 하는 정도였다.
다행인 건...
직전에 편의점에 들러서 푸딩을 하나 구매했다는 것.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푸딩뿐이었다.
좀 더 뒤져보니까 가방에 단백질 쉐이크도 하나 있었다.
그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친구 배달의 민족이 있으니까, 바로 배달의 민족을 켜봤다. (솔직히 여기 오기 전에 배달의 민족으로 로즈브리즈 한 번 검색이라도 해보고 왔어야 했다.) 앱을 켜보니, 배달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바로 치킨집이 이었다.
단 하나의 치킨집.
뭐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치킨을 시키려고 하는 순간.
사장님이 숙소에 남겨둔 숙소 이용 팁 메모지가 보였다. 거기에 맵달쫄간장 치킨이 가장 맛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난 양념을 먹고 싶었고, 양념과 맵달쫄간장 사이에서 203984번의 번뇌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맵달쫄간장보다 양념이 더 맛있을 것 같아서 결국 반반을 시켰다. 근데 사장님 말대로 맵달쫄간장이 훨씬 맛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똥고집 부리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맵달쫄간장 치킨이 양념 치킨에 비해 훨씬 맛있어서 그런지, 한 번 맵달을 먹은 후에는 양념에 손이 가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노력했지만 양념만 한 가득 남아버리고 말았다.
난 풀빌라에서 그날 (늦은) 점심, 저녁, 아침까지 모두 치킨 한 마리로 해결했다. + 아 푸딩이랑 단백질 쉐이크도 있었다.
솔직히 주변 산책할 때 다른 고객들이 고기 굽는 냄새가 너무 맛있게 나서 치킨으로 교환해 볼까 생각을 20398번 정도 했다. 예쁜 접시에 담아서 교환해 보자고 하면 교환해주지 않을까? 가족 단위 혹은 남자일행들은 좀 쿨하게 치킨 거래 가능하지 않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내가 완벽한 E였다면 그들과 합석해서 치킨과 고기를 쉐어 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난 E가 60% 정도 수준인 중도 E파이기 때문이다. 소문자 e이기 때문이다.
치킨 제법 좋아하는 편인데 그 다음날 아침까지 치킨 먹으려니까 속이 좀 니길거려서 좀 힘들었다. 하지만 치킨 자체는 참 맛있었다. 저랬는데도 치킨이 남아서 비닐봉지에 싸서 가지고 갈까 했지만,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았다.
그래서 그날 혼자 뭐 했니?
로즈브리즈는 수영장풀이 꽤 넓은 편이다. 그래서 4~5시쯤에 나도 풀장에 들어가려고 주춤거리며 밖으로 갔었다. 근데 여자분들끼리 삼삼오오, 가족단위, 커플 등 모두가 예쁜 수영복 혹은 래시가드를 입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준비한 수영복은 수영선수들이나 입는 전신 슈트... 난 수영에도 제법 진심이었기에 tpo를 맞추지 못하고 혼자 질주해 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후퇴하고 몇 시간을 기다리니, 지친 사람들이 고기를 먹으러 갔다. 수영장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난 자유형과 평영으로 치킨을 소화시키기 시작했다.
조금 부끄러웠던 것은,
1) 수영장 위치.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는 야외 자리에서 수영장이 정면으로 보인다. 어떤 아이들이 '저기 사람 수영해!' 라고 부모님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2) 수영장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혼자 삼각대를 들고 왔다 갔다 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난 내가 철면피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생각보다 아직은 소녀라는 것을...
소녀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야인시대와 함께... (저 분 뭉치인데, 뭉치 아시는 분...?)
갑자기 조회수 올라서 확인해봤더니 여행 : 국내 숙소 후기에 올라와 있는 글 발견..!
소소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