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독립서점 & 3개의 북카페
난 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1년 독서량이 그렇게 대단한 편은 아니다. 1년에 책을 한 30권 정도 읽는다. 적게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을 아주 많이 읽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난 책을 읽는 것보다 책 구경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책이 가득 찬 공간을 구경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회사에 다닐 때도 가끔 그냥 특별한 목적이 없이 교보문고나 코엑스 별마당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 사람들이 조금 더 적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 또한 가끔은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을 만지작 거리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고,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도 좋았다. 보통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라면, 조금 더 소란스러웠을 텐데. 책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평온하게, 조용히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이, 경주를 간다고 해서 달라질 리는 없었다. 난 경주에서도 책방, 독립서점, 헌책방, 북카페를 돌아다니며 좋아할 만한 공간을 찾는 것에 열심히였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경주에서 다녀왔던 책방/독립서점, 북카페를 소개하려고 한다. 책방/독립서점과 북카페가 무엇이 다르냐면,
책방/독립서점 : 상대적으로 책 읽을 공간이 크지 않다. 책을 구경하고 구매하기에 좀 더 적합한 느낌
북카페 : 맛있는 음료 구매 + 그곳에 있는 책을 골라서 읽고 올 수 있는 공간
이런 특성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책을 구매/구경하고 이동하기에는 책방/독립서점이 더 좋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북카페가 더 좋다.
특색 있는 경주 책방
소개하고 싶은 경주의 책방 혹은 독립서점은 세 군데이다. 너른벽, 소소밀밀 황남점, 어서어서 라는 곳이다.
사실 여기에서 봄날이라는 헌책방을 하나 더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 사이 아쉽게 사업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 카페 공간만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혹시 궁금한 분들은 직접 검색해서 다녀와봐도 될 것 같다.
구경을 목적으로 한다면, 어서어서-소소밀밀 황남점은 걸어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 너른벽도 금리단길에 있기 때문에 날씨만 괜찮으면 왔다 갔다 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루 동안 세 군데를 모두 다녀오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너른벽,
너른벽은 지나가다 보면 노란색 간판이 무척 눈에 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 흠칫하게 되었다.
뭐랄까,
간판이 너무 직설적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라면 입 밖에 잘 꺼내지 않을 단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열되어 있다. 퀴어, 정병, 탈식민, 젠더, 계급, 비인간 등등... 뭔가 낯설면서 살짝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여길 들어가지 말까, 들어가 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은 들어가 보고 싶어서 딴에는 용기를 내서 들어가 봤다. 간판에 비해 내부는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을 자주 하지 않는 주제를 말하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조금은 낯설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주제를 말하는 책들이 많다.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뇌에 약간 자극이 되는 느낌이었다.
다음은 소소밀밀 황남점,
소소밀밀은 두 군데 있다. 황리단길에 있는 것은 황남점이라고 되어 있다. 소소밀밀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다 보면 가게 자체도 이쁘고, 내부 공간도 아기자기하다. 그림책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도 내부 공간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림으로 사람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쁜 공간이라서 그런지 평소에는 인구밀도가 적당한데, 주말이나 특정 연휴기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책이나 공간 구경이 조금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다음은 어서어서.
이곳은 경주 독립서점으로 예전부터 유명세가 있었던 곳이다. 소소밀밀이나 너른벽에 비해서는 책의 컨셉이 엄청 독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관심 가는 책들이 많았던 곳이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잘 몰랐을 법한, 하지만 관심이 가는 그런 종류의 책들이 좀 더 많이 있었다. 어쨌든 황리단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다가다 들르기 좋았다.
가장 매력적인 건, 여기 들어오는 순간 뭔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밖은 엄청 시끄러운데, 여기에서는 조용하게 어떤 책들이 있는지 나만의 탐험을 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이제부터는 북카페를 소개하려고 한다. 잠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매력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모두 두세 번 이상씩은 방문한 곳들이었다.
이어서, 소소밀밀, 북미. 이어서 & 서점북미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황리단길에서는 살짝 떨어져서 읍성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을 잘 골라서 가면 한가로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소소밀밀은 무열왕릉 근방이다. 시내와 거리가 있다 보니 높은 확률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교통편으로 이동은 조금 빡세다는 단점이 있다.
이어서,
이어서는 경주에 있는 동안 2~3번 정도는 다녀왔던 공간이다. 겨울의 이어서는 방문한 적이 없어서 또 다른 모습이겠지만 여름의 이어서는 정말 환하고 예뻤다. 창 밖에 푸른 나무들이 가득 담겨서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책을 구매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책을 이어서에 가져가서 읽을 수도 있고, 이어서에 있는 일부 책들을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대화를 한다기보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종종 여자친구 때문에 억지로 이 공간에 온 듯 보이는 남자분들도 계시는데, 그걸 보는 것도 조금 웃긴 포인트 중에 하나다. 글래스 와인도 팔고 있어서,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매력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서점북미,
서점북미도 한 세 번쯤은 갔던 곳이다. 거기에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었다.
처음에 북미라고 해서, 남미/북미할 때 북미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North America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book me라는 이름을 보고, 아, 살짝 뻘쭘했다.
북미는 영화를 컨셉으로 하고 있는 독립서점, 북카페이다. 그래서 판매하고 있는 책들도 영화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처음에는 영화 관련 책들이 뭐 다양할까 싶었다. 그냥 영화 중에 소설 원작이 있는 것들 위주로 판매하고 있을까?
근데 전혀 아니다.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 꼭 죽는 영화 등장인물 특징에 대한 책, 여주인공에 대한 클리셰 등등. 좀 재미있는 책들이 많아서 놀랐다.
중고 원서들도 조금 판매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원서도 구매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도 하나 구매했었다. 무엇보다 야경이 진짜 예쁜 편이니까, 여행하다 지쳤을 때 야경 보러 한 번 가봐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소소밀밀
소소밀밀 황남점과 다르게, 이곳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그리고 중심지와 살짝 떨어져 있어서 특유의 여유로움이 참 좋다.
책 읽고 공부하기에도 참 좋은 공간인데, 함께 볼 수 있는 책들도 참 귀엽다. 평소의 나라면 잘 찾지 않을 것 같은 스타일의 책이 많아서 그런가? 이곳에서는 뭔가 뇌가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고, 새로운 뭔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다보니 나한테 행복이라는게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게 실감난다.
그냥 코코아 한 잔에 재미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하루면 그게 행복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