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잃게 되는 것들
안압이 또또 올랐다. 보통은 안압이 올라갈 때쯤에 오른쪽 눈이 뿌옇게 변한다거나 편두통처럼 한쪽 머리가 아파오기 때문에 안압이 많이 오르기 전 바로 병원에 방문했었다. 사실 요 근래에도 오를 거 같은 느낌이 들긴 했다. 나는 생리전증후군이 매우 심한 편이라 평소에 그냥저냥 잠을 자더라도 생리가 다가올 때쯤이 되면 수면장애가 극심해진다.
2주 전부터 자야 할 시간이 돼도 잠에 들지 못한다. 평소에 분명 그 시간에 잠들었으면서도 이 시기에는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 기다려도 1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보니 애초에 잠드는 걸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이번엔 나름 노력을 해서 열심히 자보려고 했다. 명상 영상을 틀어놓고 최면 걸듯이 잠에 들어보는 거였는데 효과가 좋은 날도 있고 전혀 소용없는 날도 있었다.
사실 호르몬 영향도 있었지만 가족들과의 패턴이 맞지 않는 영향도 있었다. 내가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해도 가족들이 움직이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바로바로 깨버리니까 수면의 질이 아예 무너졌다. 그런 상태로 몇 주를 보내고 겨우 생리가 끝나고 다시 수면 패턴을 찾아도 또 몇 주만 지나면 다시 이 과정이 반복됐다.
다행히도 이러는 동안에 안압이 올라가는 증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증상이 있어야 병원을 가는 거니 꼭 다행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무튼 잠자는 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우선은 영양제를 주문했다.
아무래도 잠드는 것만큼이나 잠을 자면서도 너무 쉽게 깨버리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말로는 마그네슘이 이런 사람들에게 좋다고 해서 일단 주문해 둔 상태인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주문하자마자 품절이라 해외배송이 오래 걸리는 중이다.
또 생리 전만 되면 수면장애가 생긴다는 걸 파악했으니 내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이걸 고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엔 운동을 하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잘 다루면 궁극적으로 해결되겠지 하고 여유롭게 마음을 먹었었는데 아무래도 당장의 삶에 지장이 있으니 해결이 필요했다. 피임약으로 호르몬 조절을 해도 좋아진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좀 망설여졌다.
인터넷 검색을 쭉 훑다가 우연히 생리전증후군 치료제라는 약을 발견했다. 피임약이 아니라 생약 성분으로 구성된 약인데 어떤 식물의 원료를 추출해 생리전증후군을 집중적으로 해결해준다는 약이었다.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공유하자면 프리페민정이라는 약이다.
기본적으로 3달을 먹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1달을 먹고도 괜찮아졌다는 사람이 있어 효과를 믿어보기로 하고 며칠 전부터 복용 중이다. 약이 3달치이긴 하지만 5만 원이나 하는데 산부인과 처방을 받으면 실비청구도 할 수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좋은 정보가 되기를.
무튼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었지만 안압이 오르는 건 한순간이었다. 일어났을 때 오른쪽 눈이 맛이 가버렸다는 걸 바로 알았다. 세수를 하고서 거울을 보니 확실히 핏줄이 다 터져서 흰자가 빨갛게 물들여져 있었다. 사실 이 정도로 눈이 심하게 안 좋아진건 오랜만이라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일단 한국무용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안압이 오르는 것도 하도 달고 살아서 그런지 당황은 했어도 또 왔구나 싶기도 했다. 사람들마다 그런 몸의 증상이 한두 개쯤 있지 않을까. 비 오는 날 허리가 쑤신다든지 전에 부러졌던 어디가 가끔 쑤신다든지 하는 귀찮고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증상. 내게도 여러 통증들이 있지만 안압도 어느샌가 익숙해져버렸다.
1시간 무용수업을 듣고는 당연하게 안과로 향했다. 오늘은 진료 보던 선생님이 안 계셔서 다른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는데 다시 염증이 재발한 거 같다며 30까지 안압이 올랐다고 하셨다. 정상적인 안압 수치는 10에서 20정도라고 알고 있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라 조금 더 당황했는데 몇 번째 재발한 건지 물어보셨을 때 새삼 이 증상을 익숙하게 여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생리가 다가올 때마다 증상이 반복되는 거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모두가 똑같이 그런 증상을 겪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사실 5월에도 한번 재발했다가 다시 잠재웠었는데 다시 방문한 거다보니 안압이 오르는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거 같기도 했다. 선생님은 계속 반복된다면 대학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안압이 오르는 증상이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다른 원인과 물려있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내일모레쯤 다시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처방받은 안약을 잘 챙겨넣고 새로 받아온 염증약을 먹는 것뿐이다. 잘 자겠다고 결심해봐야 그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강박으로 다른 스트레스까지 넘겨주고 싶지는 않아졌다. 결국 지금은 잠자는 것보다 눈 건강을 챙기는 일에 집중할 때이다.
어떤 고통은 너무 자주 반복됨으로써 어느 순간 그 심각성을 잊어버린다. 정작 가장 나를 챙겨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인데도 가장 접점 없는 타인이 그 심각성을 지적해 줄 때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거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고 매번 다짐하지만 익숙함은 사고 영역을 너무 좁혀버리는 거 같다.
새로운 선생님의 진료로 안압이 오르는 증상이 보통일은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일단은 정상화시키는 일에 집중하고 조만간 대학병원을 찾아가보긴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