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명약
전에 안과 포스팅에서 프리페민정에 관해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프리페민정은 생리전 증후군 치료약이다. 나는 잠을 못 자면 그 여파로 안압이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생리 전에 수면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서 시험 삼아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먹기 시작한 지는 한 달밖에 안됐지만 정말 만족하는 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에 후기 겸 추천사를 남긴다.
사실 난 생리전 증후군이 점점 심해졌다. 이십 대 초나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생리가 시작했을 때 하루 이틀 정도 생리통만 있었지 생리전 증후군이라고 할 게 딱히 없었다. 하지만 이십 대 후반이라고 할 나이가 되면서부터 차츰차츰 하나씩 증상이 추가됐다.
가장 고통받았던 건 수면장애였다. 사실 원래도 잠을 잘 자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수면 패턴을 바로 잡을 때가 있었는데 생리 하기 2주 전, 배란기가 시작될 무렵엔 여지없이 그 패턴이 무너졌다. 불을 다 끄고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래 그냥 포기하자 싶어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곤 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 때문에 컨디션은 다 무너졌다.
수면장애의 여파인지 모르겠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무리하는 느낌이 들 정도랄까. 신호등이 꺼질 거 같아 뛰어가야 할 것 같다면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감히 뛸 생각도 못할 정도로 체력이 바닥이었다. 매일 같이 싸이클을 타고 스쿼트랑 플랭크를 하면서 평소 체력을 길러놔도 생리 전만 되면 쌓아뒀던 체력을 모두 끌어다 쓰는 느낌이었다.
호르몬이 무너지면서 모든 통제가 불가능했다. 앞서 말한 잠에 관한 것도 그랬지만 먹는 것도 심했다. 사실 평소엔 배가 부른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아무리 좋아하는 게 있어도 적정량을 먹는 편이다. 간식보다는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하자는 주의라 하루 두 끼만 먹고 나서는 웬만하면 더 먹지 않는다.
하지만 생리 전만 되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식욕이 참아지지 않았다. 이때만큼은 먹고 싶은 걸 먹자고 풀어주지 싶겠지만 나는 애초에 많이 먹으면 배부름 이상으로 위가 아픈 사람이다. 많이 먹는 게 힘든데도 식욕을 억누를 수가 없으니 통제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스트레스였다.
마지막으로 생리전 증후군을 해결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감정 조절 때문이었다. 정말 생리 전에 성격 파탄자가 되는 걸 매달 경험했다. 나는 내가 화내는 상황을 좀 무서워한다. 어릴 때부터 예민하다는 걸 욕처럼 들어와서 그걸 티 내는 걸 극도로 겁낸다. 평소에야 내 감정을 내가 다루려고 노력하면서 기분 나쁠 상황에도 적절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생리 전만 되면 그 몇 배로 노력해야 겨우 누를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 시기에 내 멋대로 모든 사람에게 내 감정을 풀어대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소한 상황에도 화가 치밀고 예민해지고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날뛰는 상태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아직도 감정을 잘 못 다루나 싶어 자책하며 2주 정도 시간을 보내다 생리가 끝나면 하루아침에 기분이 나아지는 걸 보면 어이없기도 하고 호르몬이 얄밉기도 했다.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리는 그리 무서울 건 아니었다. 다소 불편할 뿐 생리통이 심한 편도 아니라 기껏해야 일주일이면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리기간뿐만 아니라 생리 전 2주, 길면 3주 전부터 나를 괴롭히니까 이 시기가 다가오면 심적으로도 많이 불안해졌다.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겠다고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
사실 생리전 증후군을 다루는 데 피임약을 많이 사용한다고도 한다. 나 역시 프리페민정을 처방받으려고 찾아갔던 산부인과에서도 처음엔 피임약을 처방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피임약은 호르몬 변화를 다시 호르몬 변화로 막는 느낌이라서 장기적으로는 몸에 좋을 거 같지 않았다. 또, 부작용도 많다고 들어와서 그런지 별로 시험해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난 인터넷 검색으로 프리페민정을 알고 찾아간 거였는데 이 약은 아그누스카스투스라는 열매로 만든 생약이다. 물론 이 약도 사람에 따라 피부 트러블이나 소화 불량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니 모든 사람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산부인과에서도 이런 점을 언급하며 나한테 1달분을 처방해주려고 했는데 약 자체가 3달치로 나왔기 때문에 3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약을 처방받게 됐다.
일반적으로 세 달은 먹어야 약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한 달 만에 그 효과를 드러냈다.
사실 처음 며칠 복용했을 땐 소화가 안되는 느낌이 있었다. 배가 좀 뭉쳐서 내려가지 않는 느낌? 근데 생리전 증후군에 시달리던 것보다 그 정도 소화불량은 참을 수 있는 느낌이라 중단하지 않고 계속 복용했다. 언제 먹든 상관은 없다 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주로 아침에 복용했다. 또, 되도록 일정한 시간에 먹으려고 했다.
생리 전 2주가 됐을 때 식욕이나 감정적인 부분이 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평소보다 식욕이 오르기도 했고 감정이 더 말랑말랑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두 내가 다룰 수 있을 정도로만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넘어가다보니 매일 같이 폭식이 이어져 생리 기간에만 2킬로가 찌기도 했고 감정 조절이 안되니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좋아하는 걸 먹더라도 평소처럼 먹을 수 있는 정도로만 먹다보니 오히려 살이 빠지고 있다. 이번달부터 듣기 시작한 기타 수업을 들으러 갈 때도 사람들과 만나는 게 무섭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겪던 무기력도 사라져서 소설 구상을 계속 이어가는 중이고 평소보다도 활기찬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한 달을 온전히 꽉 채워 살아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정말 반갑기도 했고 이 약을 알게 돼서 정말 감사하기도 했다. 내가 겪은 효과를 주변에도 설파하고 싶어 여기저기 이야기하긴 했는데 다들 증후군이 심하지 않은지 시큰둥하긴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이 됐으면 해서 포스팅으로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