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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Feb 16. 2024

일상_02

최선을 다해 나를 믿자

예전엔 시험을 준비하는 일이 생기면 하루하루를 오직 시험만을 위해 살았다. 언론고시를 준비했던 2년을 돌아보면 정말로 시험 준비 기간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행복을 끼워 넣은 적이 없었다. 한동안 공채 시험이 없어 준비하지 않기도 했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건 아마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모두 뒤로 미뤄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엔 자소서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예전과 다르게 준비해보자고 마음먹었었다. 뽑히기 위한 사람으로 꾸며내는 대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자소서만큼은 합격하는 일에 익숙했지만 또 걱정되기도 했던 건 그런 새로운 도전 때문이었다. 나대로 보여주지 뭐 하고 대담한 척했지만 사실은 합격해야만 나다운 모습을 스스로 인정해 줄 걸 알았기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태도는 드라마 pd가 되고 싶다는 너무 간절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시험만큼은 매 전형마다 조금은 더 여유를 갖고 즐겨보자고 결심했으나 사실 쉽지는 않다. 시험에 있을 변수를 줄이려는 강박이 스멀스멀 올라와 일상을 꽉 쥐어버렸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부끄러움이 없게끔 매 순간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게 익숙했고 무의식 중에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험준비를 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다시금 오늘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어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어느 정도로 여유를 줘도 괜찮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판단하기가 어렵다. 왠지 잘못된 선택으로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가는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면서 나를 자책할 거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번 시험만큼은 좀 다르게, 즐기면서 준비해보자고 가졌던 마음을 지켜보기로 했다. 몸이 너무 피곤한 날에는 기상 알람을 끈 채 더 자보기도 했다. 시험날에 먹을 음식으로 똑같이 식단을 채우던 것도 이번엔 달리 했다. 탈이 나지 않을 정도라면 먹고 싶은 걸 먹기도 했고 당장 풀 수 없는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가볍게 달래기도 했다. 상식공부와 작문으로만 하루를 꽉꽉 채우며 제발 시험이 끝났으면 하고 탈진시켰던 것과 달리 이번엔 재미있는 드라마를 찾아보며 하루를 즐길 수 있게 숨통을 트여줬다. 


어떤 방법이 옳을까. 과연 이 선택을 내가 후회하진 않을까. 미래의 내가 이때를 돌아보며 원래 하던 대로 행동할걸 그렇게 아쉬워하진 않을까. 어쩌면 시험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면 항상 이 질문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정말로 후회 없이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따져 최고의 선택으로만 채워야 이룰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순간순간에 내린 내 선택을 온전히 믿어줄 때,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든 나를 믿어주고 비난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결국은 그 순간의 내가 나에게 가장 옳은 판단을 했을 거라고 믿어주는 거야말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은 했어도 매일 같이 정해둔 분량의 상식 공부를 끝내고 되든 안되든 자리에 앉아 작문을 써냈다. 이제 정말 모든 준비는 끝냈으니 남은 건 마음가짐이다. 시험이 잡히고서 준비했던 시간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을 살아왔던 나를 믿어보려 한다. 드라마 pd 면접에서 떨어지고 현장에 나가 일을 시작했던 나.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고민하고 계속해서 글을 써왔던 나는 증명할 필요 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시험을 볼 때 내가 쌓아왔던 시간들이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담대하게 결과를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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