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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Mar 11. 2024

소설_03

사랑은 더럽고 추한 것

보통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 때 어떤 순서로 생각해낼까? 최근 영화 가여운 것들을 보고 왔는데 너무 충격적일 만큼 반해서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나 며칠 시달렸다. 내 뇌를 다 뜯어고쳐서라도 그렇게 기괴한 창작을 해보고 싶다. 그 이야기에 자극받아서 그런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더럽고 추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참 오묘한 게 이상하게 쓰려고 할수록 내 기분만 이상해지지 정작 이야기는 너무 정상적으로 흘러간다. 기괴함을 담아내는 건 오히려 내가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밀고 갈 때 완성된다. 쓸 때는 몰랐지만 다 쓰고 보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싶은 거다. 나만 이런가.


사실 보통은 이야기를 쓸 때 나에서 출발한다. 주로 나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모습보다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을 끄집어낸다. 첫 번째 과제에서는 내가 가진 강박과 질투심으로 두 명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가끔 스스로 이해 안 될 정도로 이상한 완벽에 사로잡힐 때가 있는데 누가 뭐라 해도 귀에 안 들어오고 계획이 어긋나면 그 계획으로만 돌아가려고 매달린다. 그렇게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다 자꾸 어긋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한 명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쉽게 질투하는 내 모습을 담아냈다. 주변에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친구들이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운이 좋게 타이밍이 맞아 얻어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결과는 그 친구들의 노력이 기반했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그렇게 이해하려 하지만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에는 그 모든 노력은 보지 않고 결과물만 보며 부러워한다. 내 질투가 너무 부끄러워서 모두 숨기고 친구의 길을 응원하지만 이게 진짜 진심인지 의문일 때가 있었다. 그 미묘한 시기를 담아 어긋나는 모습에서도 부러운 점만 보며 잘못을 보지 못하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두 캐릭터 모두 나를 담아냈다 보니 사실 이야기를 쓰면서는 별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끼질 못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만한 감정이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다 쓰고 보니 내가 좀 못나보이려나 그런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정상적인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결국은 비틀린 이야기가 완성됐다.


이번엔 본격적으로 이상한 이야기를 써보려다 보니 잘 안 써진다. 예전에 단편영화 연출 수업을 들을 때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 있다. 로그라인만 보면 괜찮아 보이는 기획인데 막상 영화를 보면 와닿는 게 없는 거다. 잘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쁘긴 한데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해야 하나? 왜 그런지 여쭤보니 그건 일부러 그렇게 기획했기 때문이라 했다.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세워두고 그에 맞춰 벌어질 법한 이야기를 쓰니까 새로 느껴지는 게 없는 거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 이야기를 짜 맞추고 있다 보니까 스스로 느끼기에 재미가 없다. 어떻게 해야 되지..


이번 과제는 두 캐릭터가 어떤 장소에서 만나 벌어지는 일을 쓰는 것이다. 어떤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어떤 장소에서 갈등이 심화돼야 하는 설정이 정해져 있다 보니 더 자유롭게 생각하는 게 어렵다. 장소도 캐릭터도 모두 준비했는데 뭔가 와닿지가 않는다.


사실 쓰고 싶은 주제는 따로 있다. 사랑에 대해서 쓰고 싶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사랑보다는 추하고 지저분한 사랑. 내가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해 보니 따뜻한 느낌보다는 차가운 느낌에 가깝게 보고 있었다. 귀엽고 밝은 로맨틱 코미디가 잘 안 써졌던 건 그래서였나보다.


연애를 끝나고 전남친을 돌아보며 그 사람한테 받은 건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었다. 진짜 사랑이면 그럴 수 없다고. 사랑한다면서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1순위라며 반복해서 말하는 아빠도 나한테 가장 큰 상처를 줬고 그러고서도 또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모든 사랑이 정말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짓을 저지르고서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화가 먼저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로 그 사람에겐 그게 사랑일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 사랑은 예쁘고 아름다운 게 아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사랑이 이용되는 거라면 사랑은 정말 잔인하고 끔찍하고 추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랑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주 끔찍하고 더러운 이야기. 이번엔 나한테서 어떤 모습을 끌어낼 수 있을까. 사실 이 이야기도 잘 떠오르지 않는 건 가장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래도 따뜻하고 채워지는 사랑을 바라고 있어서인가 싶다.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뭔지 그 답을 찾는 것부터 참 쉽지 않다. 소설 과제를 다 마치고 나면 또 하나의 나를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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