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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Mar 22. 2024

소설_05

내 안의 어떤 선

새로 써보려는 소설은 어떤 선을 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존재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여자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존재를 찾아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어버리는 선택을 한다. 


생각해 보면 취향이란 게 굳어지고서부터는 항상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척 보기에 조금 역겹고 혐오스러워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막상 읽어보면 주인공이 이해되고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시작은 아마도 오이디푸스였던 것 같다. 연극을 공부하던 때에 각자가 좋아하는 연극 스타일이 다 달랐지만 오이디푸스에 강력하게 꽂힌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는 그야말로 엽기적으로 보이는 이 가족 이야기는 사실 한 개인이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발악이다. 자신의 앞날을 모르고 눈먼 예언자에게 폭언을 내뱉지만 결국 자신의 그 무지함이 본인 스스로도 눈을 멀게 한다는 비극적인 결말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운명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사실 그럴수록 운명에 더 깊게 파고든다는 모순은 삶의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인생영화를 꼽을 때 버릴 수 없는 두 가지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와 줄리아 뒤르크노의 로우이다. 두 영화 모두 스릴러와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이 있긴 해도 성장영화의 성격을 지닌다. 스포를 할 생각은 아니라 영화 내용을 깊게 설명하진 않겠지만 이 작품들 역시 줄거리만 설명하자면 좀 기괴하달까 엽기적으로 보이는 설정들이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사람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 처절한 모습들이 비치면서 각자의 성장을 불안한 마음속에서 응원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괜찮을까? 싶으면서도 자꾸 이런 내용을 찾는 건 나 스스로 내가 그어둔 선을 넘어버리고 싶어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라면 이래야 한다, 친구라면 이래야 한다, 연인이라면 이래야 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그어둔 선은 가끔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들고 상대가 그 경계에서 넘을락 말락 하는 순간에는 심지어 공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장 끝에는 인간이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도덕적 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깨달은 것인데 나는 참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 같다. 남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에 관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너무 못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며 자기 검열을 꽤 많이 한다. 예민한 성격이라 남들이 평범하게 보고 듣는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상황이 자주 있었다. 나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저 사람이 사실은 나보다도 더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만 나쁜 사람 취급당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미움받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틀을 깨기보다는 스스로 더 나를 가두는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숨기려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복수하고 싶을 만큼 미워하던 감정,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줬던 상황에 대한 죄책감. 실행하지도 못할 거면서 떠올리곤 하는 문란한 생각들. 사실은 모두 인간적인 감정이다. 각자의 선이 있기에 그 선을 넘어갈 만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모두의 안에서만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사연들이다. 하지만 그 선은 누가 정해놓은 걸까? 그리고 모두가 같은 위치, 같은 정도의 선을 유지하고 있을까?


기괴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선택한 소재는 결국 내가 가진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느라 겪었던 죄책감, 자기혐오에 관한 내용이다. 나를 이해해 줄 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서 모든 걸 걸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처절한 사연이다. 소재의 거부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를 기꺼이 드러내 이 행위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그걸 알고 있지만서도 사실 아직 어려움이 많다. 이걸 어디까지 드러내도 될까? 그런 두려움이 순간순간 나를 막는다. 가장 솔직한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내가 그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꺼내야만 이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숨기기 위해 솔직함을 택하려고 한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숨기고 있는 공통된 솔직함이란 걸 발견했으면서도 정작 나는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겁내는 상황. 나로 나아가는 순간은 참 쉽지 않다.


사실 아직도 어떤 벽이 나를 막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은 이걸 깨부수어야 할 거 같은데 모쪼록 다음 과제 제출 전까지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밍숭맹숭해서 애매한 평가를 받을 바에야 너무 역겨워서 토할 거 같았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듣는 게 더 좋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선을 건드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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