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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Mar 29. 2024

소설_07

피드백이 두려운 이유

이번주도 무사히 과제를 제출했다. 처음으로 마감도 맞췄다. 시간을 잘 지켰으니 떳떳할 법도 한데 가장 자신이 없는 글이다.


왜 이렇게 겁을 낼까 생각했더니 가장 나를 드러냈기 때문인 거 같다. 성적 취향을 소재로 가족의 비밀과 내가 가진 결핍을 드러내는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소 날것의 표현이 담겨있다. 소재를 떠올리고서는 사실 이런 내용으로 풀어가려던 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처럼 다소 엽기적이더라도 확실하게 가상으로 느껴지는 공간에 가둬 내가 설치한 대로 캐릭터를 마구 휘두르려고 했다. 진지하기보다는 키치 하게 유쾌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내가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아니라 그런지 사실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소재 외에 구성이나 사건들은 밤중에 불현듯 떠올랐다. 새벽이나 아침에 정신 말짱한 때가 아니고서는 대개 감정 과잉일 때가 많아서 솔직히 뭔가 생각나도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글은 뭔가에 홀린 것 마냥 술술 써내려 갔다. 핸드폰으로 급하게 적은 건데도 내 안에 숨겨져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략적인 줄거리가 한 번에 완성됐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이야기로 다시 조립하냐는 것이었다. 글을 쓴 직후에 바로 읽었을 때 낯이 화끈거렸다. 가상의 캐릭터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긴 해도 분명히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거 읽으면 사람들이 다 미친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두려움이 먼저 느껴졌다. 과제 제출까지 시간이 남은 덕분에 며칠 동안은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감춰낼 방법을 떠올렸다. 내가 너무 느껴지지 않게 다른 설정들로 가려놓고 싶었다. 이걸 그대로 보여주기에 부끄러웠고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걱정 됐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솔직함을 두려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에 여러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에 놀라기도 하면서 이제는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며 그렇게도 다짐했건만 나는 여전히 날것의 내가 가장 두렵다. 모순적이기도 한 건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미워하고 부정했던 모습을 드러내면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특히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상처들을 내 방식대로 처치하고 나면 그 일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여러 번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괜찮아 보일 법한 일들에 한정시키고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전의 포스팅에서 말했듯 나는 잔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쓰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정상적일 법한 범주안에 넣어버리곤 했다.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미리 걱정했고 이상해 보이지 않게끔 정상의 포장지로 꽁꽁 싸맸다. 그러니 결국은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가 나왔다. 잔인해지다가도 어느 순간 밍숭맹숭하게 단념해버리니 글을 쓰는 나도 후련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너무 오랫동안 자기 검열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서 보이는 모순된 점을 그냥 그 사람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보다 나한테 물들이기 싫어 격하게 배척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한테도 그런 모순이 없었을까? 애초에 좋은 면만 가지고 올바른 행동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엄격하게 선을 그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나 스스로 온전해지는 법에서 계속 멀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와 스스로 존재하는 나와의 거리감이 아직도 좁혀지지 않았다.


이번 과제는 그걸 깨내려는 시도였다. 사실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서는 폭력성과 선정성만 담겨있는 거 같아서 도대체 이걸 왜 쓴 거지 싶었다. 과제를 낼 때마다 내게는 어떤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을 제출하려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 싶은지 생각했지만 나조차도 날것의 그 표현들이 거슬려 그 주제의식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두려움이 남는 건 아마 이번에야말로 내가 나를 가둬둔 그 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0대를 돌아보면 나는 정상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사람들하고 트러블을 겪을 때, 정상인의 입장에서 화를 내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정상의 범주안에서 슬퍼하고 해결하고 싶었다. 뭔가를 이뤄내거나 도전할 때에도 그 나이에 맞는 남들이 보기에 정상이라고 생각할 법한 것들을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도 결국은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그건 애초에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의 기준은 누구나 조금씩 다 다르니까.


아마 피드백을 두려워하는 건 혹시나 나를 그대로 보여줬을 때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인 거 같다. 다른 모습으로 꾸며낸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이 사람 비정상이네요라는 피드백을 들으면 그게 꼭 나에 대한 판단으로 들릴까봐 무서웠던 거다.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사실은 숨길 수 없는 내 정체성인데 그걸 부정당하면 내가 꼭 잘못된 사람같이 느껴질까봐. 


여전히 자신감은 없고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 판단을 믿자. 남들이 싫어한다 해도 그걸 맞추기 위해 다른 나로 사는 건 그만두기로 했으니까. 이 사람들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권해보면 된다. 내 책을 읽을 사람이 꼭 이 사람들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또,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면 전달할 방법을 새로 찾으면 된다. 내가 읽어왔듯 이 세상에 잘못된 책은 없다. 나랑 맞지 않는 책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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