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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May 13. 2024

공모전_01

게으름아 물러가라

지난 금요일 처음으로 공모전에 소설을 제출했다. 마감일에 맞춰 내긴 했어도 사실 기대가 없는 건 분량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 16,000자를 넘겨야 한다는 규정에 못 미치는 13,000자였다. 마지막으로 써냈던 소설을 수정해서 분량을 늘려 제출한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지키지 못했다. 공모전 마감까지 3주나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3주의 시간 동안 썼던 글을 여기저기 훑어보며 부족한 분량을 끼워 넣어보려고도 하고 미흡했던 설정을 덧붙여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보려고 해봤다. 하지만 매번 자리에 앉아서 “와 이건 안 되겠는데?” 소리만 되풀이한 거 같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뭔가를 끄적이려고 해봐도 도무지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좀만 누워서 자고 일어나면 달라질까 싶어 다시 침대에 파묻히면 거의 그대로 하루가 마무리 됐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을 보내고 분량이 채워지지 않은 소설을 제출했다.


쇼츠에 중독된 3주를 보내다 성시경의 말을 봤는데 자신과 한 약속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과연 3주 동안 얼마만큼의 약속을 어겼을까. 스스로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 건 아마 그렇게 나와의 약속을 너무 쉽게 어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걸 모르진 않았다. 오늘은 이걸 꼭 해야지 하고서 지금 딱 떠오르지 않으니까 내일 하자며 다음으로 미루고 그러다 마감을 놓치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가에 대해서 자책하며 또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 데에만 시간을 쓰며 계획을 어기곤 했다.


그렇게 자책만 해서야 달라질 수가 없다. 내가 왜 이럴까에 대해서 고찰한 끝에 사실상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좋게 포장하면 그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아예 시작하기를 겁내는 아주 답답한 습관에 물들어 있다. 아마도 재수 때 몸과 마음을 바쳐 무언가에 투자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았던 거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살았던 게 거의 10년이다. 그리고 이제 달라지려고 한 게 1년 정도 됐을까? 이 지긋지긋한 습관이 마음먹는다고 뚝딱 바뀌기 쉬울까.


작년부터 나는 턱관절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오른쪽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나더니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사실 치과에 갈 때마다 선생님께서 왼쪽으로만 씹는 거 같다며 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도 씹으라며 몇 번의 경고를 날리셨다. 하지만 내가 왼쪽으로 씹는다는 것도 선생님이 말씀해주셔서 알게 된 거지 그전엔 내가 그런 습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진료를 보고 나면 이제 오른쪽으로 씹어야지 마음먹지만 그러고 며칠 지나면 금방 까먹어서 어느쪽으로 씹으랬더라 헷갈릴 정도였다. 이미 습관은 몸에 배어있었으니까.


그러다 결국 오른쪽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나고 통증이 생기고 나서야 오른쪽으로 씹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에 심을 수 있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씹으려고 하지만 턱관절 장애는 점점 심해지기만 할 뿐 다시 좋아지진 않는다고 한다. 돌아가기엔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너무 많은 영향을 줬기 때문인가 보다.


비교군이 살짝 뜬금없는 거 같지만 그래도 돌아갈 수 없는 턱관절에 비한다면야 게으름이란 건 뜯어고칠 수 있는 정도의 습관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간에 게으름 때문에 내가 놓친 기회들이 있을 수 있겠지. 가끔은 아직 주어지지도 않았던 그 기회를 떠올리며 더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되는 건 내가 잡아야 할 건 앞으로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10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축적해 온 게으름 때문에 한순간 바뀌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믿어보려고 한다. 


모든 자책과 깨달음과 다짐을 적는 이유는 6월과 7월에 또 다른 공모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기록으로는 자꾸 무너지기가 쉬우니 브런치에라도 공개해서 이걸 어겼을 시 혼자만의 자책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내 다짐을 봤던 사람이 있다면 아마 부끄러워서라도 예전보다는 더 노력하겠지 싶어서. 


올해에는 따로 월말정산을 적지 않았는데 이번에 떠오른 목표가 있으니 남겨놔야겠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쓰는 게 천재적인 재능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내게 키워낼 만큼의 재능은 주어진 거 같다. 이걸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잘하는 정도까지 길러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 결국은 그 시간의 보답을 받듯이 잘 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조만간에 다가올 공모전은 그런 나에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다. 


동시에 브런치도 어찌저찌 잘 끌고 갔으면 좋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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