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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lin Jun 26. 2024

우울한 어른이

아프지마 서러워

살고싶었어요.


그래서 병원에 발을 디뎠고, 이제 그것도 5년이 다 되어갑니다.

사실 장기간 약을 복용한다 해서 삶이 크게 행복해진다거나 즐거워지진 않아요.

다만‘이상’은 그려지질 않고‘현실’은 바닥이었던 그때의 기억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거죠.     


지금은 어떠냐고요?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빗장을 걸어둔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그때의 나를 반성하면서요.

프리랜서지만 일도 시작했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연애도 시작했답니다.

내 몸에 잘게 돋아난 가시를 온몸으로 안아준 고마운 사람이죠.

언젠가“너는 내 어디가 좋아서 만나?”라는 술에 취한 나의 질문에 그가 답하더군요.     


“우리는 각자 결핍이 있거든. 그런데 서로 그걸채워줄 수 있을것 같았어.”     


사실 그 결핍이 어느 부분인지 저는 아직 정확히는 알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한가지 깨달은것은 있어요.

우리는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고, 혼자서는 완벽해질 수 없다는걸 말이죠.

그 뿐 아니라 내 옆에 있어주는 모든 이들 덕분에 내가 더‘나' 다워 질수 있었다는걸요.

바로 그가 옆에있음으로 알게된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해요.

그 동안 내 못난 모습을 다 보았음에도 지금껏 기다려주고 또 여전히 자신의 곁을 내주고 있는 나의 소중한 모든 이들에게.

모두가 말했지만 누구도 믿을수없던 그때의 그 말, "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이제는 알고있어요.     


맞아요, 살아가는건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아무리 밤이 길어도 다음날 해는 그자리에 다시 떠오르더라구요.

그렇게 어두운 새벽같은 공황이란 손님은 가끔씩 찾아오고, ‘톡’ 치면 깨질 것 같은 내 세상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고.

요 우울이란 녀석이 스치고간 흔적이겠죠.

저는 그 잔해들을 치워버리려 계속 노력하는 거구요.

그래서 요즘은 잠에서 깨자마자 낙서 같은 글을 쓰며 내 맘속 미로를 따라가 보기도 합니다.

반성문이 될 때 도 있고 그저 끄적거리는 일기가 될 때도 있지만 결국 한줄이라도 적고 글이 가는 길을 걷다 보면 그 곳에 곧 내 마음의 결론이 있더라구요.

비온뒤 시야가 더 선명해지듯, 처음엔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이 안개가 걷히며 또렷하게 보이는거죠. 

아침 일찍 러닝을 할때도 있는데 새벽공기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헐떡일때면 뭔가 내가 살아있다는걸 느끼기도 해요.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좋거든요, 그저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내가 존재한다는걸 느끼게 해주니까요.

또 벤치에 앉아 멍하니 햇볕을 쬐며 책을 읽거나 공상에 빠지기도 해요.

이제는 책과도 꽤 친해져서 오히려 불안하거나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땐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힘내’라는 뻔한 위로의 말보다 더 효과적이거든요.

이야기하다보니 정말 저는 정석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치유 해왔네요.     


어느 날은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데, 친구가 너는 참 사는게 즐거워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고민 같은게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존재의 이유, 나라는 사람의 가치”     


나는 왜 살고 싶은지,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지.

그게 제 고민인거죠.


몇 년의 숨 고르기에도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울의 잔해들도 분명 옅어질거고 내 의지가 붙들고 있는 일상들이 그 가치를 증명하는날이 올거라 믿거든요.

그리고 내게는 언제든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소중한 이들이 있으니 더 이상 두렵지 않고요.     

오늘도 아침의 시작을 6알짜리 알약으로 시작하는 나는‘우울한 어른이’이지만, 조금 늦게 자라도 괜찮아요.

언젠가는 진짜 괜찮은 어른이 될테니까요.     


2024년 6월 30일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친절에 감사해하고, 햇빛이 주는 따스함을 만끽하고, 하루를 기록하며 여전히 혼신의 힘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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