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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May 31. 2024

우리를 구원할 우울


생각해 보면 불행이 첫 시작이었다. 나는 불행했다. 그 불행으로부터 도망친 곳이 우울이었다. 그렇게 나를 구원 한 건 우울이 되었는데, 결국 우울은 나를 점점 파 먹어 갔다. 나는 우울에 잠식되어 무기력에 짓눌린 채 삶을 놓으려고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기력에 숨어 나를 그저 방치하려 했다.


그날들의 일기를 보자면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무기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우울은 만성이어서 한참을 울고 나면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지만
무기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살아보려고 살아내려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매 순간 발버둥 쳤다
그것만으로도 벅차서 이미 너무 지쳐서 모든 걸 다 소진해 버려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침대 위 몸을 일으켜 세울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나를 움직이게 할 용기는 없다
나는 나를 버리고 싶다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해버리고 마는 생각들

모든 것에 의미를 찾는 병이 생기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의 끝에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나는 오늘 다시 절망했고, 나는 다시 죽고 싶어졌다
요란한 꿈을 꾸고 불안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나는 단 한순간도 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살아내기가 너무 힘이 들고
나는 죽기가 겁이 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있는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나는 죽어간다
언제쯤이면 이 지독한 생이 끝나는 걸까
나는 언제쯤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런 내가 마음을 먹었다. 우울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고 그 안의 선생님은 나에게 응해 주었다. 30분 정도 선생님과 상담 후 정신과 약을 먹기로 했다. 내가 일기장에 차곡차곡 쓴 이야기를 다 하기에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저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급급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똑똑하니까 나를 알아챘을까. 그래서 30분의 시간으로도 충분했던 걸까. 그런 의문 속에서 의심이 생기고 나는 나을 수 있을까 불안했다.


약 효능은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다고 느꼈고 약에 대한 거부감은 훨씬 심했다. 나는 약을 하루밖에 먹지 않았고 병원도 가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괜찮아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기력에 숨어 나를 놓고 나를 버리고 싶은 건지도, 나의 우울이 다시 무기력에 숨고 나는 모른 척하며 그저 살아만 있으면 되겠다 했었다. 무기력증은 죽음 앞에서도 어김없이 끊임없이 무기력했으니까.


시간은 쉼이 없었고 첫 진료 후 4주 가까이 지나 다시 선생님을 만났다. 다시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그날 있었던 일과 그동안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를 어쩌지를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시 약을 먹어보기로 했고 나는 다시 (미련하게도) 내가 괜찮아질 거라고 기대했다.


세 번째 진료 다음 날 나는 몸이 아팠고 부작용 우려로 항우울제 등의 정신과 약과같이 복용할 수 없어 정신과 약을 며칠 중단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두 번째 진료에서 느꼈던 것처럼 나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저 약 기운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정신과 약은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일까, 그런 생각에 다다랐다. 아픈 걸 잊게 해주는 약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아픈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는 약이 아닌 결국 스스로 괜찮아질 때까지 그저 눈 가리고 아웅인 그런 진통제인 걸까, 나는 그런 의문에 약을 먹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몸이 아픈 게 나았으나 세 번째 진료 5일이, 마지막 약을 먹은 지 7일이 지나도록 나는 다시 약을 먹지 못했다. 우울은 끝이 없고 무기력은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밤에 잠을 자고 싶지 않은 건 결국에는 내가 이겨내야 할 문제라면 이 약들이 다 무슨 소용인 건가 그런 의문으로부터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지 9주가 되었다. 내 상태는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계속 의심받고 있었던 ADHD로 인해 뇌파 검사를 했다. 선생님은 '당신은 성인 ADHD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검사지를 잔뜩 한 나에게 '당신은 우울증입니다'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병에 걸린 건지 알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충실히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을 뿐이었다.

약을 먹으면 나는 더 나아질까, 나아갈 수 있을까. 의심과 불안은 내재되어 있지만, 우울은 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지만, 문득 불쑥 치솟아 오르지만 않으면 괜찮았다. 그러니 이번 주는 그래도 잘 지내었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내면에서 어떠한 감정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저 외부에서의 자극 하나가 나를 울렸고 나를 서글프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했더니 선생님은 내게 좋아지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아지고 있다고 더 나아질 거라고 그리고 일상을 되찾을 거라고.


하지만 열흘 중 하루는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또 하루는 그저 지냈다고 내 기분과 감정은 여전히 극과 극을 오가며 나를 괴롭힌다고 나는 언제쯤 이런 감정으로부터 괜찮아질 수 있을까 묻고 싶었다. 괜찮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가져왔고 의지와 의욕도 앗아갔다.


나는 그렇게 진료 초반에 많은 방황을 했었다. 1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물론 우울에는 도돌이표가 찍혀있어 끊임없이 되돌아오고는 했지만, 집 밖에 나올 수 있었고 사람들의 틈에 있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틈에서 웃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좋아하게 되었고 더 나은 나를 기대하게 되었다.


죽고 싶어 하는 내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 뜻대로 되지는 않고
나는 내 감정에 휩쓸리고 만다.

오늘의 나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나는 살아남고 싶다고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오늘 이후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우울증은 낫지 못한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내 앞에 우울증 완치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 괴로운 순간이 찾아오고 각종 충동에 휩쓸리지만 결국 나도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지 하고.


나는 나아가려고 한다. 땅을 딛고 한걸음 내딛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나를 삶의 한가운데로 데려가려 한다. 우리에게 부디 삶이 이어질 수 있기를,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기를, 이 글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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