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디저트를 기다린다

by so


주부 경력 13년 차이지만 요리는 여전히 서툴다. 재료를 준비할 때는 칼보다 주방가위가 편하고, 볶고 끓이는 일보다는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쪽을 선호하는 실력이랄까. 흠, 그러니까 실력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신혼 초부터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자연스레 주방일을 맡아왔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청소나 정리정돈 같은 다른 집안일들을 챙기다 보니 점점 요리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런데 아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평소 혼자 먹는 평일 점심은 밥하기도 귀찮고, 줄어든 기초대사량에 맞춰 열량을 조절할 겸 단백질 셰이크를 밥 대신 먹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셰이크를 줄 수는 없으니, 매일 점심을 차리게 된 것이다. (다행히 회사를 다닐 땐 돌봄 교실과 어머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아침과 저녁은 남편 덕분에 잘 먹고 있으니, 점심 정도는 밥에 김, 있는 반찬 한두 개만 꺼내 먹으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매일 비슷한 메뉴에 금세 질려 했다. (당연한 건가?!) 결국 귀찮음을 극복하고 마트표 돈가스를 튀기기도 하고,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요리 ─ 이를테면 미역국이나 볶음밥 같은 것 ─ 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아주 조금은 실력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요리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일상적인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마음먹고 해야 하는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일에는 꽤 열심이다. 여름마다 팥을 직접 삶아 팥 조림을 만들고, 가을이면 밤 조림과 과일청을 담근다. 쿠키나 타르트 같은 걸 굽는 일도 잘은 못하지만 좋아하고. 근데 매 끼니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 아, 그런가. 나는 밥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구나.


먹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무엇을 먹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 뿐이다. “밥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대체로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니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식사를 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가급적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려 노력은 하지만,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요리가 재미있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칭 미식가인 우리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인생의 큰 행복을 놓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데, 사실 난 딱히 아쉽지 않다. 대신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하니까.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은 영양소의 균형과 어제 먹은 메뉴, 한 달 식비 같은 것들을 복잡하게 고려하여 결정하는 전략적인 노동이다. 그래서 나에게 밥은 꼭 해야 하는 일, 주어진 숙제와 같다면, 디저트는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내가 고르는 놀이나 취미에 가깝다.


울적한 날에 퍼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혼자서 투게더 한 통을 비운다), 그날이 다가오면 유난히 당기는 밀크 초콜릿(다크 초콜릿으로는 커버가 어렵다), 하얀 생크림 말고 노란 커스터드 크림이 듬뿍 들어간 크림빵(사실 빵 없이 크림만 먹어도 좋겠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부드러운 티라미수, 진한 커피와 함께 먹는 치즈 케이크, 블루베리 콩포트를 올린 버터향 가득한 스콘, 바삭하기보다는 꾸덕꾸덕한 갓 구운 쿠키 ··· 먹고 싶은 점심 메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데, 오후에 먹을 달디 단 디저트는 술술 나온다.


나른한 오후의 작은 즐거움, 오늘은 뭘 먹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늘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내는 아이였다. 숙제를 다 하고 나서야 만화를 봤고, 준비물을 챙긴 다음에야 마음껏 놀았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을 했다면 나는 분명 15분을 참고 기다려 마시멜로 두 개를 먹었을 것이다. 덕분에 사회에서 기대하는 성실한 학생, 성실한 일꾼으로 자랐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을 해내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놓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하나 주고 15분간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잘 참고 기다린 아이들이 이후에 성적이나 삶의 질이 더 좋았다는 심리학 실험)


마시멜로 실험의 뒷이야기를 찾아보다가, 이 실험이 단순히 아이의 인내심이나 자제력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기다려도 괜찮을 것이라는 신뢰의 감각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 기다림은 불확실한 모험이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지금 마시멜로를 먹지 않아도 내일 더 맛있는 과자를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기다릴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나는 무작정 참고만 살아온 게 아니었다. 그저 할 일을 끝마치고 스스로 선택하는 작은 행복을 사랑하는, 그래서 즐겁게 기다릴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달콤한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어쩌면 근거 없는 확신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제는 언제든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 굳이 오늘까지 해야 하는 급한 일도 없고,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상, 오늘도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옆길로 샌 요리 초보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우선은 오늘 아이와 약속한 붕어빵을 먹으려면 점심부터 잘 차려 먹어야겠다. (앗, 할 일이 있긴 하구나..)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ing to get.

(Forrest G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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